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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Bo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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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 23:19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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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언직
교회의 첫째 사명은 복음선포이다.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온 예수께서는 복음선포를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마태 28,19)고 명하셨다.
이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사도 바울로는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1고린 9,16)이라고까지 말했다.
복음선포의 사명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이자 그 지체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지체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빛으로 주위를 밝혀야 하며, 복음의 빛 안에서 새로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증거자의 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보물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이 보물을 지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자랑스런 기쁨으로 복음선포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크게 두가지로 증거한다.
하나는 말로써 증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동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1) 말로써의 증거
사도 바울로는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다"(로마 10,17)라고 말하면서 말로서의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혔다.
원래 복음선포의 형식은 말로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여 듣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은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2) 행동으로써의 증거
한편 가장 힘있는 복음증거는 곧 생활을 통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남의 모범이 되고 복음정신에 맞을 때, 사람들은 그 생활에서 쉽게 하느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은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고 누룩이 빵을 부풀게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맛을 내고 세상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부풀어 오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주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으로 이끌고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의 성실성을
보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3) 교회의 무류성(無謬性)
복음선포의 사명으로 예언직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는 그 진리의 선포에 있어 그르칠 수 없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로써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튼튼한 기초로 삼으셨고 당신 교회의 가르침이 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의 무류성(無謬性)'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각 주교들이 무류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일치하고,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사정을 유권적으로 가르칠 때, 결정적인 한 가지 판단에 의견의 일치를 본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를 오류없이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세계 교회를 위해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가르치고 판단할 때에, 무류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니 이 결정 사항은 신앙의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35항). 여기서 교회가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은 오직 신앙과 도덕에 관해서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나 신자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일치를 볼 때, 그 진리는 틀릴 수 없다는 것이다.
2. 왕 직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나라의 왕이시다. 그 분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미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루가 19,38;요한 12,13)이라고 불렀을 때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셨다(마르 15,2;요한 18,33-37 참조). 그러나 그 분의 왕국은 지상의 왕국과 대결하여 맞서는 그런 성격의 왕국이 아니라 당신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날 완성될 왕국이라고 말씀하셨다(루가 22,28-30 참조).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어, " 하느님의 아들들의 품위와 자유"(교회헌장 9항)를 누린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과 그 행사에, 하느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동참하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 수행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셨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드디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하실 것이다(1고린 15,27-28).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며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주께서는 당신 왕국을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시키고자 하신다"(교회헌장 36항).
"구원의 계획 자체를 고려해서 신도들은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잘 구별해야 한다. 또한 이 두 가지를 서로 조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어떠한 현세적 일에 있어서나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인간 행위를 막론하고 현세적 일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런 구별과 조화가 신도들 행동 태도에 아주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사명이 현대 세계의 특수환경에 보다 완전히 응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교회헌장 36항).
그러면 왕직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몸소 말씀과 행동으로 분명한 답을 주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르 10,42-45).
실로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겉옷을 벗으시고,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종으로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셨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이나 노예들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정의한다면 아마도 '발을 씻겨주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세주이자 병을 고치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위로써 증거해야 한다. 특별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즉 가난하고 외롭고 감옥에 갇히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마태 25,31-46) 자비를 베풀어 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하는 자세는 자기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과 모든 이를 섬기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기에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내놓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기분대로가 아니라 그분의 뜻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길이요,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의 자세이다.
3. 사제직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들의 정성을 하느님께 바치는 직책이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중개자인 대사제이며(히브 5,5-10) 그의 신비체인 교회도 이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류가 아버지 하느님과 화해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아버지"(마태 5,48)를 본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로마 5,11).
구약성서에도 이미 예고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는 길을 마련하셨으며, 그분이 바로 화해의 길목이 되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을 대사제라고 한다. 예수의 사제직분은 당신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들인 신자들에게도 계승되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당신 안에서 사제다운 백성으로 한데 뭉치게 하시며, 당신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고자 하신다.
성세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하나의 사제단을 구성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하느님 백성이 참여하는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참여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1) 일반사제직(一般司祭職)
베드로 사도는 그의 첫째 편지에서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리십시요"(1베드 2,5)라고 말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왕다운 사제단'을 이루고 있다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실상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란 모든 신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사제직 자격을 말하고, 이로써 지상의 교회는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누구나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왕다운 사제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한은 견진 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더욱 굳세어진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은 죄를 범했을 때라도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의 사함을 받고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여 행복한 사람이 되고,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에도 병자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다. 그리고 혼인성사를 통하여 남녀의 결혼이 거룩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나타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여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힘을 받는다. 이와같이 신자들은 각자가 성체봉헌에 참여하고 성사를 통하여 사제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를 일반사제직이라고 한다.
2) 교계적 사제직(敎階的 司祭職)
신자들의 일반 사제직과 직분상의 교계적 사제직은 정도의 차이뿐 아니라 본질적 차이로 구별된다고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러나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가장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히브 5,1-10;7,24;9,11-28) 신약의 참 사제로서 복음을 전하고 신도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축성되는 것이다.
사제들은 그 직무의 정도대로 유일한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임무를 나누어 수행하여 ...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깨끗한 제물로 성부께 한번 바치신(히브 9,11-28) 신약의 유일한 제사를 주께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미사성제를 재현하며 적응시키는 것이다" (교회헌장 28항).
사제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미사성제를 거행한다. 이 제사는 참으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완전한 공경과 흠숭을 드리며 축복을 받고 거룩해진다. 이와같이 교계적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미사성제를 거행하는 거룩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모든 하느님 백성과 함께 백성의 이름으로 이 제사를 하느님께 바친다.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께로부터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즉, 평신도와 성직자는 성성(聖性)에로 부름받았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우리의 위대함은 우리가 받은 특별한 은총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열렬한가에 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게 되기 위해 성성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4.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
교회와 그 성원들의 첫째가는 사명은, 항상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증거자가 되고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그 완성에 이르지 못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표양대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 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이다.
신앙인은 또한 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써 성화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사와 전례에 적극 참여하여 각자의 생활을 봉헌하고, 성사와 기도생활에 충실하여 그 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일이다.
이 세 가지 사명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중요시하거나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한다면, 신앙생활은 조화가 깨져 기쁨이 없는 메마른 삶이 될 것이다. 이 세가지 사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요, 우리 교회는 그 분 의 모범을 따라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겨주신 사명이다.
5. 세례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의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
교회의 일원으로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 봉사와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직,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거룩함에로 참여하는 사제직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다. 한 마디로 신자는 이런 사명을 부여 받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뜻이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요, 이 나라는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사랑의 왕국인 것이다.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의 응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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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1. 6. 3. 23:18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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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성사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영신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성사를 모방하여 교회가 성서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영적이고 현세적인 은총이 내리도록 하는 행위를 준성사라 한다.
준성사의 근본적인 대상은 사람에게 해당되며 성수, 성유를 사용하거나 성호를 긋는 것으로 물건이나 건물에도 사용된다.
그래서 제2차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60항에서는 준성사를 정의하기를 '이들은 성사들을 어느정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특히, 영적 효험을 표시하며 교회의 간구의 힘으로 그것을 얻어 준다. 준성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성사들의 그 본래의 효력을 받도록 예비되고 갖가지 경우에 생활이 성화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준성사는 성사와는 같지 않지만 성사와 같이 어떤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는 이 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기도를 통해서 선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
또한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심을 간단한 예식을 통해 간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성사를 통해서 신앙생활의 중심인 성사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고 우리의 생활이 거룩한 생활, 완덕의 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준성사란 신앙인으로서 성사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성사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사와 준성사는 차이점이 있는데,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것이고, 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권한에 의해서 교회가 세운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성사는 성사예식 자체(행위)로 은총을 받지만 준성사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준성사는 교회가 하느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헌신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무엇이나 적용된다.
이러한 준성사에는 축복 또는 강복(사람에게)과 축성(사물과 성물), 구마(악마나 악의 감염을 막아내는)가 있다.
그리고 강복과 축복의 대상은 사람과 사람에 관련된 사물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준성사는 하느님의 사랑이 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준성사의 기원
그래서 준성사가 교회에 의해 생긴 것이지만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기원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구약성서
가) 하느님의 축복에 관한 성서 구절
◐ 창세2,3 :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축복하셨다는 내용.
◐ 창세9,1 :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심.
◐ 창세12,2 : 하느님께서 신앙의 선조인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주심.
◐ 민수6,22-27 :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사제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면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내려주시겠다고 말씀하심.
나) 성조들의 축복에 관한 성서구절
◐ 창세27,27-29 : 이사악이 자기 아들에게 복을 빌어줌.
◐ 창세49,1-29 : 야곱이 열두아들에게 복을 빌어 줌.
◐ 신명 33 : 모세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복을 빌어줌.
다) 사제들에 대한 축복에 관한 구절
◐ 창세14,19 : 영원한 사제라 불리는 멜키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십사하고 하느님께 간구함.
◐ 신명 21,5 : 사제는 하느님께 뽑힌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라는 내용.
◐ 2역대 30,27 : 사제들은 백성을 위해 복을 빌어주고 하느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내용
또한 만물은 하느님의 축복을 알려주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의무를 갖고 있음을 알수 있다(다니엘3,57-88:시편 66,8,103,135).
2) 신약성서에서
가) 사람에 대한 축복
◐ 마르10,16 :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심.
◐ 루가24,50 :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두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해 주심.
◐ 사도 3,26 : 베드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부터 받은 축복에 대해 설명.
◐ 에페 1, 3 :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영적으로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을 언급.
나) 사물(음식물)에 대한 축복
◐ 마르6,41(병행구 참조) :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시기 앞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심.
◐ 마태26,26(병행구 참조) :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기 전에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시는 내용.
◐ 1고린11,23-34 - 사도 바오로가 예수께서 최후만찬에서 행하신 것을 설명.
이렇듯이 신.구약 성서 전체에서 축복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성사가 교회가 정한 것이기는 하나 교회의 창작물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신 권한으로 성서를 근거로 하여 나온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물을 축복하셨고 교회는 이를 근거로 해서 준성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3. 준성사의 종류
1) 축복(강복)
축복은 사람이나 물건에 하느님의 은혜를 비는 행위이다. 이 축복은 교회가 간구하는 힘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수단이며 교회가 제정한 것이다.
축복은 보통은 성직자가 오른손으로 십자가 표시를 그으며 기도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전례 중에(성사 중에) 집전자가 참석자들에게 하기도 하고, 전례 밖에서 간단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비전례적인 축복을 신자이면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좁은 의미로는 성직자에게 국한된 것이 대부분이다.
축복의 궁극적인 주체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며, 그 대상은 사람은 물론 사람과 관련된 모든 사물을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성사와는 달리 축복을 받는 각 사람의 신앙 정도나 진실여하에 따라서 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축성(방사)
축성은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성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축성의 특징은
첫째로, 제단에서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킬 때 사용되며,
둘째로, 사제로 축성될 때 또는 주교로 성성 될 때
세째로, 성당에서 쓰이는 미사용 제구, 종, 교회 등을 거룩하게 할 때 이루어진다.
네째로, 축성은 평신도는 할 수 없으며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는 주교와 사제들만이 할 수 있으며 특별한 경우에는 주교만이 할 수 있다.
다섯째로, 축성된 사람이나 물건들은 오로지 하느님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이 축성된 물건이 세속적인 목적이나 용도로 사용될 때, 불의적으로 사용될 때는 독성죄라는 것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축성된 물건 또는 축성된 이들은 하느님께 향한 심신을 독톡히 하는데 쓰여야 하며, 사람들은 성화에로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3) 구마
교회의 주교나 사제의 영역 안에 포함된 사람이나 물건에 대한 구마란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 또는 악령이 떠나도록 명령하여 막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교회가 인간이 악령에 사로 잡힐 가능성을 인정하고 믿는 이들을 구하기 위함인데, 현대에서는 비교적 드물고 오히려 구마를 그리스교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으나 그래도 이상할 경우는 사제에게 알려야 한다.
구마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구세주 예수께서 죄악에 대해 승리를 거두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신약성서 루가 복음 10,17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였더니 마귀들까지도 저희에게 복종하였습니다"라는 제자들의 보고가 나와 있다. 또한 예수께서도 직접 악령, 마귀들린 사람들에게 명하시어 악마를 추방하신 것을 볼 수 있다.(마태 8,28-34: 마르 1,23-28; 루가9, 37-44)
그러므로 구마는 사람에게서 악령을 추방해 달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형식으로 행해지며 이때 구마식의 집전자는 사제이다. 악령에 사로잡힌 듯한 현상이 심리적인 요인이나 질병에서 오는 것인지 아닌지 신중히 결정하여야 한다.
4. 축복의 종류
축복의 집전자는 일반적으로 성직자이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신자들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성사 중에 축복하거나 간략하게 축복을 할 때에도 성직자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축복의 종류를 보면
가) 사람에 관한 축복 - 가정, 부부, 어린이, 자녀들, 약혼자들, 출산 전후의 축복, 외출 못하는 노인, 병자, 선교사 파견시, 교리교사, 공익단체 순례자, 여행자.
나) 건물과 활동에 관한 축복 - 새집, 새 신학교와 수도원, 학교, 도서관, 병원, 사무실, 상점, 체육관, 교통수단, 과학기재, 동물, 전답과 목장, 새곡식, 식탁.
다) 신심을 위한 축복 - 가정에서 사용하는 십자가, 성모상과 여러 성인상, 묵주, 성화, 메달 등이 있다.
5. 준성사의 내용 - 사용과 가치
준성사는 신앙인의 신앙과 봉헌의 정신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결코 미신적인 행위의 대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준성사 그 자체로서는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이 준성사들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권한이 주어진 교회 신비체의 기도를 통해서만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준성사를 올바르게 이용하면 하느님께서 가시적으로 거처하시는 교회의 축복 안에서 우리의 신앙 고백이 가능해지며, 우리의 이 행위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을 줄 것이다. 즉, 우리가 축성된 십자가나 묵주, 성패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리심을 기원하는 것이며, 악마로부터 보호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에 결코 미신적 행위는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준성사를 이용하고 존경하는 것과 교회와 기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은 커다란 효과를 준다. 특별히, 우리가 걱정이나 고통, 위험이나 유혹 중에 있을 경우에 준성사들을 생각해내고 사용하는 것은 커다란 유익을 줄 것이다.
6. 하느님의 은총을 통한 성화
준성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 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향하는 우리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으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우리의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 간구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적인 모든 사물들이 축복된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자연적인 모든 사물들이 준성사로 축복될 때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축복 하고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준성사는 우리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이기적이거나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교회는 공의회 문헌인 전례헌장 61항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성사와 준성사들의 효력은 이러하다. 즉, 잘 예비된 신자들에게는 그들 생활의 거의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수난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빠스카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화된다. 이 신비에서 모든 성사와 준성사가 그 효능을 얻는다 . 또한 거의 모든 물질은 올바르게 사용되기만 하면 인간의 성화와 하느님의 찬미를 지향할 수 있다'
즉, 준성사는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기에 준성사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의 성화, 거룩하게 하는데 있을 것이다. 또한, 준성사가 이단적이거나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신앙의 순수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가 인준한 예절과 경문을 정확하게 지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또 예절에 대해 의문이 날 경우가 있을 때는 교회에 물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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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1. 6. 3. 23:17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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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품이란 무엇인가?
'성품'이란 교회 내의 신권을 가진 성직계급을 뜻하는 말로써, '질서에 따른 직분'이라는 말이다. 이 성품에는 주교품과 사제품, 그리고 부제품의 세가지 품이 있다.
이러한 품을 받는 예식을 가리켜서 '서품식'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해 주교와 신부,부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성품성사를 통해 성직자로 서품된 이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하느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선교의 사명을 각자의 직무에 따라 수행하게 된다.
2. 성품성사의 제정에 관한 성서적 증언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성목요일에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십시오" (루가22,19)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거룩한 신비를 주관할 책임을 사도들에게 주심으로써 성품성사를 제정하셨다. 성품성사를 성목요일에 제정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면서 죄를 용서할 권한을 주셨다(요한 20,22-23).
이밖에도 신약성서의 많은 구절에서(요한 15,16; 사도 6,6; 13,3; 1디모 4,14; 5,22; 2디모 6,1; 히브 5,4 등)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사제직을 설정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3. 사제의 직무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 가운데 "봉사하시는 분"(마태20,27-28)으로 계시면서 권위를 가지고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사도들에게도 당신의 권위를 잇는 대리자로서의 임무를 맡기셨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진정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당신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8,18)라고 이 직무의 부여를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공동체를 관리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권위를 의미하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권위로써 사제들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사를 집행하며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1)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르16,15)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사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나 사제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2)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
사제는 자기에게 위탁된 권한 내에서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임무를 수행한다. 즉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 백성을 하나로 모으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사제는 교회가 요구하는대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을 가르치고 때로는 충고도 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이러한 임무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그 일을 계속하며 끝까지 참고 가르치며 책망하고 권고하고 권면하라"(1디모 4,2)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
3) 전례와 성사의 관리자
말씀의 선포는 전례를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전례의 집전으로 인간이 맡은 하느님의 능력이 말씀으로 변화.전달되는 것이며, 성사의 거행으로 이것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는 성세로써 사람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으고, 고백성사로써 죄인을 하느님과 교회에 화해시키며, 병자성사로써 앓는 이에게 힘을 주고, 특히 미사로써 모든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케 한다.
4. 성직자 :주교, 신부, 부제
'성직자'는 성품성사를 통해 축성된 주교. 신부. 부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교회의 성직자들은 모두 독신을 하느님 앞에 약속한 분들이다. 성직자들이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하느님과 신자들에게 갈림없는 마음으로 봉사하는데 유익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한 제물로 자신을 봉헌한다는 뜻에서 종말론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1) 주 교
주교는 사도의 후계자로서 한 교구를 관장하는 목자이다. 주교는 성품성사의 수여자이며, 견진성사의 집전자이고 고백성사 등을 통제하는 교구의 으뜸가는 교사인 동시에, 교회의 거룩한 사제이며 교회의 행정적 관리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교구에 속해있는 모든 신부와 부제들은 주교의 협조자로서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모든 사도들 중 수위권을 가지고 있던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전 세계에 대해 목자권을 행사하시는 주교를 '교황'이라고 한다. 모든 주교들은 교황과 늘 일치해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2) 신 부
신부는 우리가 흔히 '사제'라고 지칭하는 분들을 일컫는 말이다. 신부는 주교를 도와 일정 지역(본당 관할 지역)을 담당하여 복음을 전하고 사목활동을 하며, 각종 성사를 집전함으로써 본당 신자들의 영신적 사정을 돌보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3) 부 제
부제는 주교와 신부를 도와 복음을 전하며 혼인성사를 주례하고, 세례성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각종 준성사를 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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