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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라끌리또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빠라끌리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 14, 16 - 17). 진리의 성령을 예수님께서는 빠라끌리또라고 부르신다. 빠라끌리또란 '위로자', '협조자' 또는 '변호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다른' 또는 '두 번째' 빠라끌리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첫 번째 협조자이시기 때문이다. 과연 예수님은 세상에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신 하느님의 첫 번째 협조자이시고 성령께서는 '그분 다음에' 또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요청으로'오시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업을 "세상 끝날까지"(마태 28, 20) 계속 추진하시는 두 번째 협조자이시다. 협조자라고 번역된 '빠라끌리또' 라는.. 더보기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교회의 기원과 성장에 관해 전해 주는 중요한 책으로, 성령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어 '성령의 복음서'라고도 불리운다. 오늘날 교회가 초대 교회의 모범을 따르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성서이기도 하다. 누가 썼는가? 루카복음서를 쓴 사람이 썼다고 본다. 신약성서 중에 머리말은 등장하는 수신인이 모두 '데오필로'('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한 사도행전의 머리말에 첫 번째 책에 관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을 뿐 아니라, 루카복음서의 끝 부분과 사도행전의 앞 부분이 예수님의 승천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책에 사용된 문체나 용어도 비슷하다. 루카복음서처럼 그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힐 수 없지만 편의상 루카라고 한다. 언제 쓰여졌는가? 사도행.. 더보기
요한 복음서 요한복음서는 세례에서 부활까지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전해주는 복음서이지만,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꼬, 루카)와는 다른 내용이 많으며, 문제도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깊은 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예수님 스스로 당신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 하느님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직접 밝히는 부분이 많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공관복음서와 구별되는 복음서이다. 누가 썼는가?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한 것으로써 그 내용이 참되며,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이 책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요한 21,24). 또한 이레네오(리옹의 주교 130-200년경) 뽈리가르뽀(스미르나의 주교 69-155년경?)의 이야기를 빌어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를 사도 요한이라 하고, 그가 네 번째 복음서를 집.. 더보기
루카 복음서 루카 복음서는 마태오복음서나 마르코복음서에 없는 내용(루카의 특수자료)을 꽤 많이 담고 있어 예수님의 행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전해준다. 특별히 '소외받는 이들의 복음서'라 불리우는 루카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찬미와 기쁨, 희망과 평화의 분위기가 넘쳐 나고 있다. 누가 썼는가? 무라또리오 경전목록(180년경 로마에서 쓰여짐)과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130-200년경)는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바오로의 협조자인 의사 루카(골로 4,14;디모 4,11; 필레 1,24)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썼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복음서를 쓴 사람이 사도행전도 썼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도행전에서 루카가 전하는 바오로와 바오로 서간에서 바오로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오로의 모습과 활동 내용이 무척 .. 더보기
마르코 복음서 마르꼬복음은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다른 복음서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이 예수님의 행적과 십자가 죽음, 부활 안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생생한 예수님 사건의 증언록이다. 누가 썼는가?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빠삐아스(60-130년경)가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들은 내용을 충실하게 기록했다'고 말한 것과 신약성서에 나온 말들(사도 12,12.25; 필레 1,24; 골로 4,10; 디모 4,11; l베드 5,13)을 근거로 바오로의 협조자요 베드로의 통역이던 마르코가 복음서를 집필했다는 설이 나왔다. 그러나 편의상 마르코를 저자로 부를 뿐 누가 복음서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히브리어와 아람어.. 더보기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공동체를 위한 설교를 가장 풍성하게 담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생활 규범으로서 교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책이다. 누가 썼는가?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130-200)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60-130)가 남긴 기록을 따라 첫 번째 복음서가 사도 마태오에 의해 쓰여졌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도 마태오가 스승 예수님에 관한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태오 복음서는 Q문헌(예수님의 어록)과 마르꼬복음서를 참고하여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 확실한데, 예수님의 직제자 마태오가 썼다면 그렇게 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마태오복음서에는 마르꼬 복음서를 그대로 이용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더보기
복음(福音) 복음(福音)이란복음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말로써 표현된 기쁜 소식이다. 이에 상응한 성서적인 표현은 구약성서에서는 '베로라(besorah)', 신약성서에서는 '유앙겔리온'이었다. 베소라는 원래 종교적인 색채를 띤 용어가 아니었는데(2사무 4,10; 18,20.22.25.27; 2열왕 7,9) 후대에 이르러 이사야서나 나훔서에서 메시아적인 구원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알 리는 대목에서 이 용어가 약간 변형된 채, 광복의 기쁨을 알리거나 인간 구원을 알 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이사 40,9; 41,27; 52,7; 61,1-2; 나훔 2,1). 마태오911,5)와 루카(4,18; 7,22)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유앙겔리온이란 말 마디를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40,9; 61,1-2)과 연관지어 사.. 더보기
신약성경의 문화적 배경 신약성서의 문화적 배경 헬레니즘 헬레니즘이란 그리이스의 문화사상으로서 유다인의 문화, 종교사상인 유다이즘과 더불어 유럽문화에 큰 영향을 준 사상이다. 알렉산더대왕(기원전 336-323)의 세력으로 지중해 연안에 만연된 헬리니즘은 당시 유다를 지배한 에집트 및 시리아의 통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유다사상을 헬레니즘화 하기 위해 강압적인 통치방법을 쓰고 성전을 모독한 사건(기원전 169)은 유다인들로 하여금 마카베오 일가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 결과 유다는 잠시나마 독립을 쟁취하였으나 하스모네 왕조의 정권다툼은 기원전 65년에 이미 시리아를 점령한 로마의 개입을 불러 들였다. 이를 기회로 로마는 기원전 63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다인들의 종교적 특권만을 인정.. 더보기
신약성경의 지리적 배경 신약성경의 지리적 배경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티나의 지리 변천사를 다음 몇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가. 헤로데 대왕 시대는 팔레스티나 전역이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었다. 나. 헤로데 대왕이 죽은 뒤에는 이 지역이 그의 아들들에 의해(사분영주로서) 3개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다. 기원후 6년 남부지방(유데아, 사마리아)은 로마 총독 관할지역이 되었다. 라. 헤로데 아그립바1세 재위중인 41-44년에는 다시금 전 국토가 통일 관리되었다. 마. 아그립바1세 이후 팔레스티나 전체가 다시 로마 총독의 관할지역이 되었다. (이 상태는 사실상 70년까지 계속됨) 분할지역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티나는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체제가 서로 다른 여러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이두메아 최남단지역으로 원래 에돔인들이 .. 더보기
신약성경의 역사적 배경 신약성경의 역사적 배경 예수님 당시 지중해 일대는 로마 제국의 점령하에 있었다. 팔레스티나는 기원전 63년경에 로마 제국에 점령되었다. 에돔(이두메아인)의 혈통은 이은 헤로데는 BC 37년경부터 유대의 분봉왕으로 로마제국의 인정을 받았고, BC 20년경부터 예루살렘의 재건과 증축공사를 시작하였다. BC 4년 헤로데가 죽은 뒤 그의 세 아들은 나라를 3분하여 각기 이어받았다. 아르켈라오는 이두메아, 유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차지했다. 데카폴리스는 자치구역으로 남았다. 아르켈라오는 당장 폭군의 정체를 드러내 국민은 견디다 못해 기원 후 6년에 아우구스토 황제에게 탄원을 올렸다. 황제는 그의 영지를 몰수하고 그를 귀양 보냈다. 그때부터 이 지역은 총독을 파견하여 로마가 직접 다스렸다. 총독은 지중해 연안 도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