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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Bo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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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4. 13. 15:22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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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협(허임) 바울로는 독실한 교우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기해박해가 치열했던 1839년 8월 경에 체포되었다.

너무 심한 고문과 혹형에 배교를 하여 풀려 나왔으나 곧 후회하여 배교를 취소하였고 여러 달 동안 포청옥에서 고문을 받고 1840년 1월 30일 포청옥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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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24. 4. 13. 15:21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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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현석문의 누나로 어려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17세때 결혼하였지만 3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친정에 돌아와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도왔다.

항상 규칙적인 독서와 묵상기도를 하는 등 신앙생활에 몰두하였고 뛰어난 교리 지식으로 여회장직을 맡아 외교인들을 가르쳤다.

무지한 교우들을 일깨워 주었으며 냉담자를 권면하고 어린이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는 여회장으로서 교회일을 성심껏 돕다가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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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24. 4. 13. 15:19 한국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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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문 까롤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 현계흠의 아들이며 현경련의 동생으로 서울 중인 계급의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1837년 샤스탕 신부가 입국하자 복사(服事)가 되어 신부와 각지를 순회하며 전교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였 다.
1839년 기해박해로 주교와 신부들이 회장으로 임명하였고 박해 후 성직자가 없는 조선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순교자들의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여「기해일기」를 편찬하였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입국한지 얼마 안되어 체포되고 병오박해가 일어나게 되자 정철염, 우술임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 후에도 형벌과 고문은 별로 받지 않고 꽤 우대를 받았지만 사형선고를 받는 순간까지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회장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였고, 1846년에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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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