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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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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 23:09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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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세사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
성령께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제 3위로 계셨다.
그러나 인간이 성령께 대하여 알게 된 것은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 이다. 구약성서에 하느님의 영(얼, 혼, 기운, 숨)으로 표현된 성령께서는 창조사업에도 참여하셨고(창세 1,2), 구약시대에는 하느님께서 선택한 일꾼들(모세, 여호수아, 삼손, 다윗, 여러 예언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이사야 예언자는 앞으로 성령을 가득히 받아 일할 구세주를 예고하였고(이사 11장), 요엘 예언자는 만민에게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 줄 날이 오리라고 예언하였다(요엘 3장).
구약에서 예언된 구세주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심으로써 이 세상에 오셨고(루가 1-2장),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를 받으실 때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 오셨고,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의 유혹을 이기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다(마태 3-4장).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은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마태 12,28).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오순절날 함께 모여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가득히 받았다(사도 1-2장).
초대 교회에 있어서 사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보편적이었던 성령의 은사는(사도행전, 고린토 전서 12장 참조) 그동안 교회 안에서 수많은 성인 성녀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회 안에 나타나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었지만, 일반신자들 사이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일반신자들도 성령의 여러 은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계신다.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하기 전과 공의회 동안 계속하여 "오, 주여! 새로운 성령강림과도 같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오늘날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시며 모든 신자들에게 기도를 당부하셨다. 그 결과 공의회 후에는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이 시작되었고, 공의회 문헌에는 성령께 관하여 언급한 부분이 252군데나 나온다.

2. 교회 안에 머물고 계신 성령
1) 성령과 부활하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아버지께서 '높은데로부터의 힘'을 보내 주실 터이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하신다(루가 24,39). 루가 복음 사가는 데오필로에게 바치는 사도행전에서 예수의 부탁을 소개하면서 아버지의 약속이 다름 아닌 오순절에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으로 인한 세례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분은 사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명령하시며, '여러분은 내게서 그 약속에 대해 들었다. 사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여러분은 며칠 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사도1,4-5).
이어지는 예수의 승천기사에서 루가는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행전의 청사진을 이렇게 밝힌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뿐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이제 성령의 역할은 세례자 요한과 지상의 예수께 국한되지 않고, 열 두 제자들을 중심으로 태동하게 될 교회공동체에 그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사도행전에서 성령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다른 어느 신약성서 저서들에서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령은 근본적으로 아버지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포된다. 하늘로 높이 들어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제자들에게 전달하신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시는 한편 제자들에게 내려진 성령은 다시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아버지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하는 대목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 편으로 높이 올려져 앉히시고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약속을 받으신 다음에,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 성령을 쏟아 주셨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시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곧 여러분이 십자가 형에 처한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삼으셨다"(사도2,33-36). 따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분께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이제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신생 교회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2) 성령과 새로운 공동체
오순절에 내려온 성령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성령이 예수의 탄생과 공생활의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듯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태동에 즈음하여 성령은 인류 역사에 개입해 오시는 하느님의 가시적 현존이 되면서 구세사의 새로운 시대를 개막한다.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같은 혀들이 갈라지면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자 위에 내려 앉았다. 그러자 성령으로 가득차서 영이 그들에게 일러주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사도 2,2-4).
루가복음 사가는 성령으로 인한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세계도처에서 모여온 순례자들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다(사도 2,5-11).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드로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예언자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정적인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들에 있을 일이라. 나는 모든 육신에게 나의 영을 쏟으리니, 너희의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리라. ... 그러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사도 2,17-20참조; 요엘 3,1-5).
한마디로 루가는 수많은 인종들을 증인으로 내세운 가운데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통하여(사도17,16-39), 성령의 내리심과 더불어 태동한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진로와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한 인류의 보편적 구원'으로 확고하게 정해 놓은 셈이다.
3) 성령과 12사도
모든 인간이 성령 안의 새 생활을 하길 원하시는 성부께로부터 파견을 받아 인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인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기 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고(마르 1,8),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당신께서 아버지께 구하면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한14,16-17).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래지 않아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사도 1,5).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는데(요한 20,19.26), 오순절 날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성령을 받아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사도 2,2-13), 군중에게 설교를 하며(사도 2,14-36), 앉은뱅이를 고치고(사도3,2-10), 박해를 받으면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담대하게 전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할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전파하는 그분의 제자들과 증인들을 인도하는 힘이다. 성령은 그들의 행위를 지시하기도 하고(사도 2,41; 4,31; 10,19,44; 11,28; 13,2,4; 15,28; 19,21; 20,22,28), 억제하기도 한다(16,6.7; 21,4).
그런데 사도행전의 특이한 점은 성령이 항상 12사도단의 존재와 권위에 관련되어 내려 온다는 사실이다. 곧 성령은 12사도단이 모여 있을 때, 또는 사도단의 일원이나 사절이 참석해 있을 때 주어진다는 것이다. 성령은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핵심을 이룬 12사도단과 처음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신다.
12사도단의 권위와 성령의 도움은 신생교회를 세상에서 존립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두개의 중대한 원동력이다. 루가는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삶과 가르침에 밀접하게 연결시키는 동시에 서로를 불가분의 관계로 성립함으로써 이상적인 교회상을 제시하는데 성공하였다. 루가에게 있어서 성령과 교계제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두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만민 구원이라는 '보편적 구원계획'을 성취시키는데 기여한다. 제도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직된 교조주의나, 이와는 반대로 제도권에서 벗어나 카리스마적인 체험만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은 루가가 제시한 이상적인 교회상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께서 거주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서, 주님과 성령 안에서 건설되어야 한다(에페2,21-22).
4) 교회제도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
공동체 안에서 주교나 사제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성령께서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교회 전승과 대조하여 이것을 종합하여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위해 그 문제점을 올바르게 찾아 이끄는 데 있다. 그 문제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주교와 사제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권위와 순명에 대한 의미도 시대의 변화와 역사 속에서 조금씩 변형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만을 지도자로 모셨을 따름이며 그들은 모두가 주님의 자녀일 뿐이다. 교회 공동체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가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성령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성령께서는 자녀들의 삶 가운데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내리시는 선물을 통해서 그들 자녀들에게 스스로 느끼도록 말씀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제들의 생활 그 가운데에 언제나 현존하신다. 성령께서 공동체의 완성을 위해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뜻과 방법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알아듣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앙인은 성령의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성령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될 때, 모든 신앙인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현실 속에서의 권위와 순명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 성령의 활동
성령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제 3위로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협조자(요한 14,16)이시다. 성서에는 물(요한 7,37-38), 불(마태3,11), 기름(루가 4,18), 바람(요한 3,8), 비둘기(마태 3,16) 등이 성령의 상징으로 나온다.
이러한 상징들은 우리를 깨끗이 정화시키고, 생명을 주고,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붙여 주며,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성별시키고, 자유와 평화를 주는 등 성령이 우리 안에 이루시는 일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과의 체험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새 생활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영이신 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변화된 생활, 풍성한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부께로부터 파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다.
1) 성령께서 하시는 일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성령이 오시면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 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당신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체험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다. 그는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하며 하느님이 참으로 자신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고,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해 주시는 주님의 다스림과 가르침이 삶의 기본 원칙이 된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에 맛들이며, 자기 마음 안에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면 성서말씀, 전례생활, 성사생활이 더욱 생명력있게 다가오며 그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체험도 하게 된다. 성령의 도움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이들은 성령 안에서 사셨던 성모님과 성인 성녀들의 생애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이웃과 보다 친밀한 사귐을 나누게 되며,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된다.
2) 기도생활을 도와 주는 성령
성령께서 에페소 교회의 신자들에게 내리셨을 때 신자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사도 19,6). 이상한 언어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 들을 수가 없고,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1고린 14,2).
성령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 주신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탄식하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신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신다. 그리고 마음 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신다(로마 8,26-27).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언어는 자기자신을 돕는다(1고린 14,6). 바울로 사도는 이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권면한다.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기도 생활의 변화이다. 그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생활에서 벗어나고 기도생활에 맛들이게 되어 전보다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된다. 그는 더욱 자주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치게 되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며,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어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초대 교회 때에는 성령께서 내리신 경우에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사도 2,4; 10,44-48; 19,6-7), 오늘날에도 이 은사를 갈망하는 경우에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내려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이 이상한 언어는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기에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지 모르는 우리를 도와 주시려는 성령께서 영감을 불어 넣어 주시는 기도로서, 우리의 기도생활을 풍성하게 해주고 영적인 성장을 도와 주며 보다 풍성한 성령 안의 생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그래서 바울로 사도는 다른 이보다 이상한 언어를 더 많이 말할 수 있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렸다(1고린 14,18).
성령 안의 생활에 있어 기초가 되는 은사인 이상한 언어는 주로 봉사은사가 아닌 기도은사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해석의 은사와 함께 사용됨으로써 예언의 은사와 비슷하게 봉사은사로 쓰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성으로 하는 노래처럼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언어로 하는 기도는 심령기도라고 부르고, 이상한 언어로 하는 예언은 심령 예언이라고 부르며, 이상한 언어로 하는 노래는 심령노래라고 부른다.

4. 성령의 은사와 열매
1)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9가지 은사
"은총의 선물은 여러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기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고린 12,4,7).
성령께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보다 능력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9가지 은사를 주신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을 나누어 주신다(1고린 12,8-11).
성령께서는 우리가 공동체에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봉사 은사를 베풀어 주시고 키워 주신다.
(1) 지혜의 은사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1고린 12,8)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실천적인 말을 하게 하여 주어진 환경 속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한다.
(2) 지식의 은사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거나 설명하거나 설교를 할 때 영감을 받아 말함으로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은사이다.
(3) 믿음의 은사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골로 2,20). 어떤 일이나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적 확신을 줌으로써 기적을 이루는 바탕이다.
(4) 치유의 은사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1고린 12,9). 자연적 수단이 개입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역사에 기인된 육체적 심리적 영신적 치유 즉, 재생이 일어나는 성령의 현현이다.
(5) 기적의 은사
"그 무렵 사도들은 백성들 앞에서 기적과 놀라운 일들을 베풀었다"(사도5,12). 자연적 은혜를 넘어서서 놀라움과 더불어 주어지는 은혜로, 중대한 병의 즉각적인 치유같은 윤리적 기적 등이 있다.
(6) 예언의 은사
"나는 여러분이 모두 이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1고린 14,5-39). 하느님께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나 공동체에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7) 분별의 은사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1데살5,19-20). 하나의 생각, 활동, 사건 그리고 은사의 원인과 근원이 다른 무엇의 힘인지 아니면 성령인지를 아는 것은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내적 계시이다.
(8) 심령 예언의 은사
"어떤 사람은 여러가지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다"(1고린12,10). 기도회 때 어떤 사람(보통으로 성령 안에 성숙한 사람)을 움직여 영적인 깨달음을 은사적 언어(이상한 언어로) 큰 소리로 내어 말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이다.
(9) 해석의 은사
"이상한 언어를 말할 때에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한다"(1고린14,27). 한 사람이 큰소리 심령 예언을 하면 그 일반적인 뜻을 모국어로 말하도록 어떤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이다.
2) 개인의 성화를 위한 7가지 은혜
성령께서는 개인의 견고의 은사로 우리에게 7가지 은혜를 베푸신다.
(1) 슬기 :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사랑보다 귀하게 아는 지혜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사정에 관심을 갖게 한다.
(2) 통달 : 구원의 진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은혜이다.
(3) 의견 : 우리가 행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식별하게 하는 은혜이다.
(4) 지식 : 믿어야 할 진리와 믿지 말아야 할 허위를 식별하는 은혜이다.
(5) 굳셈(용기) : 신앙생활에 수반하는 장애를 극복하는 힘을 주는 은혜이다.
(6) 효경 : 하느님께 대한 자녀적 사랑을 증진시키는 은혜로서 하느님께 대한 열성을 북돋아 준다.
(7) 두려움(경외심) :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는 은혜이다.
3) 성령의 9가지 열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활하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된다.
(1) 사랑 :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아가페적인 사랑, 즉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다.
(2) 기쁨 : 기뻐해야 할 일이 없어도 샘솟는 기쁨, 하느님의 사랑,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3) 평화 : 세상풍파 속에서도 유지되는 평화로서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4) 인내 : 비록 일이 지연되는 경우라도 실망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5) 친절 : 이웃의 어려움을 알고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6) 선행 : 주님께서 주신 재산, 시간, 재능을 관대하게 다른 이를 위하여 사용한다.
(7) 진실 : 거짓이 없이 신뢰할 수 있고 착수한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충실성을 의미한다.
(8) 온유 : 자제된 힘, 약자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힘이다.
(9) 절제 : 육정을 눌러 주님의 주권하에 복종시키는 힘과 권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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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1. 6. 3. 23:08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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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례주기(주년)
    /images/icon/dot1_gre3.gif 교회는 1년을 한 주기로 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 즉, 재현함.
    /images/icon/dot1_gre3.gif 그리스도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고 그의 부활로써 완성되기 때문에 전례주년도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
    /images/icon/dot1_gre3.gif 성탄은 부활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부활이 교회 전례의 정점
    /images/icon/dot1_gre3.gif 성탄 준비기간 - 4주간의 대림시기
    성탄시기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성가정,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주의공헌, 주의 세례, 주의 봉헌 축일을 수반하고 성탄을 위해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성탄, 성모영보,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축일, 성 요셉 축일, 성요한 세자 축일, 대천사 축일 등이 이어짐
    /images/icon/dot1_gre3.gif 부활 준비기간 - 40일간의 사순시기
    부활시기는 예수수난[성지], 빠스카의 3일과 계속되는 부활주일들, 승천,성령강림을 수반하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예수성심, 예수의 거룩한 변모, 성 십자가 현양, 그리스도왕 축일 등이 계속 됨.
    대림시기의 전례
    새해의 시작 : 대림 제 1주일 - 이 날부터 교회력[전례력]은 새해가 시작
    말씀의 전례는 3년을 한 주기로 편찬 - 1999년은 A해, 2000년은 B해, 2001년은 C해의 순서
    대림시기 동안에는 제대 주위의 화려함을 피하고 대영광송을 하지 않음.
    대림환 : 대림시기 동안 푸른 나뭇가지와 네 개의 초를 꽂아 만든 것으로써 구세주께서 어느 정도 가까이 오셨는지 알려 주어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 켬.
    성탄 전례
    성탄 대축일 미사 : 모든 사제는 미사를 세대 드릴 수 있는 특권, 미사경문도 세 가지
    첫째 미사 - 밤중에 드리는데 성자께서 성부로부터 영원히 탄생하심을 경축함.
    둘째 미사 - 새벽에 드리는데, 성자께서 영원으로부터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사이에 육체를 가지고 성모 마리아 몸에서 베들레헴의 구유에 태어나심을 경축.
    셋째 미사 - 낮에 드리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심을 경축.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장엄하게 선포.
    성탄 8부 : 너무나 큰 축일이기에 성탄 후 8일간 성탄을 축하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새로 나신 예수님께 흠숭과 사랑을 드림..
    8부까지 축제를 지내는 축일은 부활 대축일과 성탄 대축일 뿐이다.
    성탄8부는 성 스테파노 축일(26일), 성 요한 사도 축일(27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28)일, 성 가정 축일(8부 내의 주일), 8부의 마지막 날(1일)인 천주의 모친 축일등 이미 정해져 내려오는 축일 때문에 축제의 의미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구유조배 : 예루살렘 신자들이 성탄 밤에 베들레헴 현지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을 부러워한 로마의 신자들이 5세기부터 마굿간 모형을 만들어 그 앞에서 성탄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1223년,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더 잘 인식시키기 위하여 짐승과 새들까지 구유 앞에 등장시켰고 이를 널리 보급시킴.
    성탄 밤 미사 전에 구유를 꾸며두고 말씀의 전례와 함께 예수 아기를 구유에 모시는 장엄한 행렬을 함. 행렬 후 새로 나신 예수 아기에게 조배를 드리고 새 삶을 다짐.
    성탄나무 : 상록수에 금실, 은실, 별 등으로 장식하여, 온갖 은총[금실, 은실]을 가지신 분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상록수]을 주시고 세상의 빛[별]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표현.
    주의 공현 전례
    삼왕래조 축일이라고도 하는 주의 공현 축일은 교회력의 가장 오래된 큰 축일이며 의무적 축일 - 한국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냄[원래는 1월 6일].
    공현이란 말은 '나타남, 나타내어 보여줌'이란 뜻.
    옛부터 교회는 이 축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세 가지의 중요한 신비를 기념함으로써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세상에 알린다.
    이 주간으로써 성탄시기가 끝남.
    사십일[사순]
    사순시기는 우리의 육체적 고신극기나 단식을 통한 참회의 생활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하여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
    40이라는 숫자는 성서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 정화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상징.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축일 전 6주간 중에서 주님의 축일인 주일을 뺀 40일간.
    /images/icon/dot1_gre3.gif
    6주간×7일 - 6일[주일] + 4일[재의 수요일까지 역산] = 40일
    재의 수요일
    사제는 지난 해 성지주일에 나누어 주었던 성지를 회수하여 재를 만들고, 이를 축성하여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 19) 하며 자신과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다.
    재는 죽음을 상징하고, 재를 얹는 것은 방자했던 자신을 채찍질하여 낮추고 참되게 사는 방법을 찾도록 한다.
    이 날 단식과 금육을 지키고 극기, 금욕, 자선을 권장 -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기 위한 훈련.
    사순시기의 각 주간의 지향
    1. 세례 : 이 기간 동안 예비자 선발예식을 하고 성 토요일[부활성야]에 세례식을 하기 때문에 미사의 독서나 기도문은 세례를 주제로 함.
    2. 속죄 : 원래 사순시기 동안 죄를 범한 신자들이 공적으로 보속 - 희생. 기도, 자선
    3. 예수님의 수난 : 사순시기 초에는 예수님의 외적 수난 사건에 앞서 예수님이 어두움과 악의 세력과 투쟁하는 모습 → 사순 제 5주간부터는 예수님의 수난이 극대화하여 성주간에 절정.
    성주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전 한 주간 - 예수님이 위대한 구원사업을 이룩하는 때요, 교회전례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에 성주간이라 함.
    성주간은 예수수난[성지]주일부터 시작.
    성지주일에 사제는 성지[빨마가지]를 축성하여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루살렘[교회]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다함께 '호산나'를 부르며 환영.
    말씀의 전례 때에는 수난사가 봉독.
    성 월요일 - 예수님의 죽음[장례]을 예고,
    성 화요일 - 제자들의 배반을 예고,
    성 수요일 -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실지 예고.

    이 3일 동안에 특별한 전례는 없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다.
성 3 일
3 일은 성주간의 후반부 3일인데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성 목요일 전례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시면서 유언을 남기셨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제자 유다 이스가리옷의 배반으로 이교도들의 손에 붙잡히셨던 날.
성유 축성 미사 : 예수님이 당신 사제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셨음을 기념.
이날 아침에 주교좌성당에서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성유를 축성 -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가 표현, 사제들은 약속 갱신식을 거행.
성유는 사제들이 세례, 견진, 신품, 병자성사를 집행할 때 사용.
주의 만찬 미사 :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저녁식사로써 당신을 만인에게 성체성사로서 주심을 기념. "서로 사랑하라" (요한 13, 34)는 새 계명이 선포되는 미사.
강론 후에 세족례 - 예수님이 사도들의 발을 씻으면서 남기신 사랑의 계명을 상기시켜 서로 봉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가르치는 예식.
영성체 후 성체를 본 감실에 모시지 않고 비워둔 채 현양제대에 모시고 제대를 벗김 - 예수께서 3일 동안 땅에 묻혀 계셨음을 드러냄.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다음 사제는 성체를 현양제대에 모시고 분향 - 성금요일 수난예절까지 신자들은 성체조배 함. 이것은 올리브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시기까지 기도와 번민으로 고통당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함.
현양제대로 성체가 옮겨질 때부터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예절에서 십자가를 벗길 때까지 십자가를 가리워둠.
성 금요일 전례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죽음의 산 골고타로 오르셨고,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로서 죽으신 날.
교회가 미사를 드리지 않는 유일한 날. 다른 성사도 집행하지 않음.
수난예식 :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경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목상의 이유로 더 늦은 시간에도 거행.
십자가 경배예식 :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의 나무이며 계속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
영성체를 위하여 본 제대로 성체가 옮겨지고 남은 성체는 별실에 모셔둔다.
성 토요일 전례 (부활성야)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 토요일 밤의 전례는 모든 전례의 극치.
이 날은 교회가 주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 - 제대도 벗겨진 채 그대로 있고 미사도 드리지 아니한다.
이 밤은 주께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참 삶으로 건너가심[빠스카]을 기억하는 밤 -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자유로, 죄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의 죽음에서 영생[부활]으로 건너감을 체험하는 밤.
빛의 예식 : 불과 부활초를 축성하고 불의 행렬을 한다. 부활로써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고 세상에 나타나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린다는 뜻에서 이 예식을 거행.
말씀의 전례 : 일곱 개의 독서와 일곱 개의 층계송을 노래한 후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로 시작. 풍금과 종을 다시 치고 이때부터 영광송을 하게 된다.
세례 예식 : 세례수 축성과 세례식 후 모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영세자와 함께 세례서약을 갱신.
부활 전례
부활 축일 결정 : 부활 대축일은 유다인들의 과월절[빠스카] 축제에서 유래하므로 유다인들의 월력으로 니산(Nisan)달 14일에 지냈으나 지금은 춘분이 지난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주일에 지낸다.
부활초 : 부활초는 부활성야에 축성하며 성령강림까지 제대 옆에 두고 전례를 거행하는 동안 불을 켠다.
부활초는 에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을 비추며 앞장 서서 인도하던 불기둥(출애 13, 21;14, 24 참고)을 상징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신다는 표지.
촛불은 초가 탈 때 사랑의 불로 작열하고 어둠을 몰아 내는 빛이 되어 영광스럽게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본성과 내적 모습을 나타냄.
부활초에는 구원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상징하기 위하여 희랍문자의 첫 글자인 A와 끝 글자인 Ω를 새기고 그 해의 수자를 새겨 넣음.
부활 삼종기도 : '부활의 날'인 주일과 부활시기에는 삼종기도를 할 때 서서 함 - 서 있는 자세는 살아 있는 인간의 자세, 기쁨의 자세, 승리자의 자세.
부활 8부 축제 : 부활의 기쁨을 하루에 끝내지 못하고 부활시기의 첫 8일 동안을 주님의 대축일로 지냄.
부활 축일이 신앙의 근본 축일이므로 12세기부터 8부로 끝내지 않고 성령강림까지 7주간을 축제기간으로 지내기 시작하였음.
8부의 전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망애 삼덕으로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나타냄.
부활 달걀 : 부활 대축일에 달걀에 그림이나 글씨 혹은 기호를 새겨 선물.
옛부터 달걀은 봄 혹은 생명의 상징. 중세에는 사순절 동안 달걀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부활주일에 달걀을 주고 받는 관습으로 바뀜.
부활 행렬 : 부활주일 미사후 선두에 꽃으로 장식된 십자고상이나 부활초를 앞세우고 노래와 기도를 하면서 행렬 -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기쁨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임을 경축.
예수승천 대축일
승천은 예수님과 우리, 우리와 하느님 나라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주는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과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한 사건.
예수님은 승천으로써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그분은 영광을 입으시고 모든 시간과 공간에 자리하시게 되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고 약속하셨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존을 일시 거두셨지만, 신앙인의 마음속과 기도하는 교회 안에 현존하시며, 특히 성체성사로서 현존하신다.
원래 승천 축일은 부활 후 제 40일[성령강림 10일 전]에 지냈음.
승천 축일 후 9일 동안 성령을 기다리면서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 - 여기서 '9일 기도'라는 말이 나오고 어떤 특별한 은총을 구하기 위해서 9일 기도를 하는 관례가 생김.
성령강림 대축일
불혀 모양으로 강림한 성령은 사도들의 지혜를 밝혀주고 마음을 뜨겁게 해주며 여러 가지 언어를 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뭉쳐 나가기 시작했다(사도 2, 1-47).
성령은 부활한 예수님의 영이요, 그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는 분이며, 우리의 위로자[협조자]와 보호자로 오신 분.
성령께서는 전례 안에 활동하시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전례행위를 그리스도의 행위가 되게 하심. 이 날 특별히 미사 중에 '성령송가'를 바침.
연중시기
부활시기는 성령강림으로 일단 막을 내리고, 하늘 나라를 묵상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긴 준비기간인 연중시기가 시작.
성령강림 후 첫 주일 -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으로 더욱 뚜렷이 드러난 삼위일체 대축일.
그 다음 주일 -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성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세워주셨지만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라 복된 성사 안에 우리 주께서 현존하여 우리와 함께 계심을 경축할 여유가 없었음.
그 다음 금요일 - 예수성심 대축일, 성 금요일의 신비 중의 하나인 창에 찔리신 예수성심을 기념.
예수성심 대축일 다음부터 대림시기까지는 그리스도 신비의 특수한 면을 경축하기 보다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경축.
긴 연중시기가 계속되다가 11월 1일에 성령의 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른 모든 성인 성녀들을 기념하는 '모든 성인의 날'을 맞음 -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차려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라는 가르침.
그 다음 날 - '위령의 날'. 우리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이니 하늘 나라에서 모두 반가이 만나기를 원하는 마음.
연중 마지막 주일 - '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리스도는 세말에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오실 왕이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최고의 흠숭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축일로 정함.
주일 : 일요일이 시작될 때 무덤에서 영광스럽게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분은 바로 우리를 위한 빛이요, 생명이요, 기쁨이 되었고, 죽음과 암흑을 없애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 부르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 주일을 거룩하게 경축하는 것이 전례생활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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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1. 6. 3. 23:07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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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느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여러분은 회개(悔改)하고 복음(福音)을 믿으시오" (마르 1, 15).
    예수님께서 당신 생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核心)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있으며, 이 하느님 나라의 다스림에 대해 여러가지 비유와 기적 그리고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심으로 깨닫게 해준다.
    당시의 유다인들의 사고에는 어떤 의로운 지배자를 그리워했으며 언젠가는 이 이상이 실현되리라 희망하여 왔다. 당시의 유다인들의 희망(希望)을 총괄하는 개념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이다.
    이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의지할 데 없고 무력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보호받고 도움을 받으며, 불의한 지배로부터 해방(解放)되는 기쁨과 평화(平和)가 넘치는 곳이리라 희망하였다. 이를 위해 아주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며, 이 새로운 시작은 생명과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 새로움, 지금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 것, 상상을 초월하는 것, 연역적으로 불가능한 것, 더구나 조작될 수 없는 것, 그러기에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 결국 '하느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다스림'은 하느님의 하느님이심, 그 분의 주님이심을 뜻하며,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인간임과 세상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하느님의 다스림'은 창조 질서에 적대적인 악의 권세로부터의 해방(解放), 구원(救援)받을 길이 없을 만큼 서로 찢겨져 있는 실재 상호 간의 화해(和解)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느님 나라의 비유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 역사 체험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에집트를 탈출할 때 놀라운 기적으로 당신 백성들을 건져내셨으며(출애 13,17-15,21)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서도 줄곧 당신 자신을 섭리의 하느님, 길을 이끄시는 하느님으로 드러내셨다(출애 16-40).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에 이웃 나라와 많은 충돌을 하며 줄곧 쓰라린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작가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신앙을 명백히 종말론화(終末論化)하기 시작한다. 이 '작가 예언자들'은 과거의 출애굽이나 하느님과의 계약 체결과 같은 과거의 모든 위대한 구원위업(救援偉業)들이 미래에 가서는 더욱 거창하게 재현되리라고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새로운 계약', 어떤 '새로운 출애굽'을 희망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다스림'에 관한 종말론적 희망(終末論的 希望)은 장차 일어날 사건 보도가 아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종말론적 희망은 오히려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의 위로(慰勞)와 희망(希望)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결국 이 세상의 지배자로 오셔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며,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키리라는 신앙(信仰)의 확신(確信)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상태에서 새롭고도 결정적인 희망(希望)을 제시하였다. 예수님은 이 종말론적 희망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마르 1, 15).
    수많은 세대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지금 다 되었다고 선포하신다.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되도다! 사실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많은 예언자들과 임금들이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여러분이 듣는 것을 들으려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루가 10,23-24).
    예언자들이 선포하던 그 때가 다 된 것이다.
    "소경들이 보고 절름발이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머거리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마르 4, 26-29).
    또 비유로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된다"(마르 4, 30-32).
    또 하느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신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비슷한다. 어떤 부인이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다"(마태 13, 33).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 안에 숨겨져 있고, 그 작은 것 안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은 가장 작은 것 안에 숨어있음을 비유로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하나의 감추어진 현실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현재 안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Here and Now)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바로 이 세상 한 가운데로 몰래 뚫고 들어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 하느님 나라의 완성
    우리가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위한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할 때, 매우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사회의 개혁 같은 엄청난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정과 학교, 직장과 사회 속에 살면서 그 생활 양식을 전수받았다. 우리는 독이나 약 모두를 이 사회와 함께 마시고 살아간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인가를 통감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시험지옥과 같은 입시 제도를 반대하면서도 자기 자식만은 될 수 있으면 좋은 학교에 보내려 한다. 소비 사회의 낭비를 반대하지만 상점에서 상품 하나를 사는 일 자체가 그러한 사회 구조에 가담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렇듯이 우리는 마치 큰 바다에 떠 다니는 해초와도 같이 사회의 가치관에 휩쓸려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메시지는 바위에다 계란을 내리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는 무에서 천지를 창조(Creatio ex Nihilo)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즉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의 노력이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있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협력을 요구하시며 마침내 는 이 세상을 모두 포괄하는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킬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하느님 만이 하실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Already) 이 세상에 도래하였지만 '아직 아니'(Not Yet)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이렇듯이 완성의 도정에 있는 하느님 나라에 맛들이고 거기에 동참하는 생활이어야 하겠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멋진 삶에 눈을 뜬 사람은 이 세상이 보장하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마태오복음 13장 44절에서 46절까지의 말씀을 보자.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지 숨겨 두고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산다. 또한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과 비슷하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물러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 하느님 나라를 위한 협력자의 생활양식
    예수님의 진복선언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이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5장은 이 진복선언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5장부터 7장까지의 말씀을 예수님의 산상설교라고 한다. 여기에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생활 양식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산상설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으로써 제시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다. 마태오복음 5장 38절에서 39절, 43절에서 45절까지의 말씀을 보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하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들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오히려 누가 당신의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편을 돌려대시오....'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들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한다. 여러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계명은 참으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듯이 보인다. 이러한 새로운 생활 양식은 교회 안에서 공동체적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규칙과 계명처럼 억지로 사랑해야겠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려고 애를 써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한계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우리가 죄많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 하느님은 이러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달을 때 우리 자신의 생활 양식과 타인에 대한 관계 양식이 변화될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생활양식이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할 때 틀림없이 이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데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교회 안에서 어떠한 체험을 하고 어떠한 생활 양식을 이루고 있는지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각자 반성해 보도록 해야겠다. 우리가 변화될 때 교회가 변화되고 마침내 세상이 변화될 것임을 굳게 믿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하느님 나라를 전해야 할 사명
    우리 모두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어두움과 악의 세력이 만연하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가난한 사람들, 즉 우리에게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모른다. 경제성장과 번영, 능률을 최대의 가치로 삼는 사회, 너무도 시끄럽고 분주하게 우리를 일로 몰아 붙여서 생각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더욱 빼앗아 가는 사회, 자기의 이익과 성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고 이에 필요없는 사람을 상처 입히고 말살시키려는 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하느님 나라와 그 의(義)를 찾아가는 것, 자기의 이해와 관계없이 참으로 사랑을 기준으로 해서 살아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설령 지금은 눈에 띄지 않지만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통해서 세상이 변혁되어 간다는 것 그리고 그와 같이 하느님 사랑의 도구로써 활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 스스로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위해 살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를 관철시키셨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 역시 우리의 삶과 죽음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증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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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