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Bokto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today
  • yesterday
2024. 4. 13. 14:43 한국의 성인
728x90

황석두 루까는 충청도의 양반집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과거보러 상경하던 도중 한 천주교인과 사귀게 되어 입교했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 동안이나 벙어리 행세를 해가며 교리서적을 탐독하는 한편 박대하던 부친과 가족들을 권면하여 입교시켰다.

그의 뛰어난 교리지식과 덕행으로 주교와 신부들의 복사를 거쳐 회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고, 다블뤼 주교를 도와 교리서를 번역하며 교회서적 출판에 관계하던 중 1866년 3월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당하는 다블뤼 주교를 따라 가다가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3월 30일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군문효수로 순교하였다.

posted by Bokto
2019. 7. 10. 22:18 천주교성지
728x90

중부 포르투갈의 산악지대인 레이리아(Leiria)교구에 있는

작은 본당인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을 말합니다.

파티마는 1917년 성모님께서 파티마본당 구역 내의 목장지대인

코바 다이리아(Cova da Iria)에 발현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리아 성당 중의 한 곳이 되었으며

수많은 순례자가 참배하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던 나무 부근에는 현재 발현 경당과 함께 발현을 목격한

루시아 수녀의 진술에 의거하여 조각된 성모상이 서 있으며

그 밖에도 병원, 호스피스, 수도단체 등이 파티마에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파티마에서 일어난 성모님의 예언은

모두 다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제 3예언에 대하여서는 최근에 와서

그 궁금증을 풀어 주었습니다.


파티마 발현중 성모님은 3가지 예언을 하시는데

특히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 13일 6회에 걸쳐

발현(發顯)한 성모님의 메세지중

1917년 7월 13일에 전해준 예언이 세가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러한 발현으로 인해 성모님을 만난 세사람의 어린이 중에 한 사람으로 후에

가르멜회 수녀가 된 루시아가 수녀원에서 이 예언에 대하여 써서 교황청을 통해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그세가지 내용 중

제1부는 지옥에 대한 부분을,

제2부는 원죄없으신 성모성심으로

러시아인들이 회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소련 붕괴)이,

제3부는 교회의 대시련을 예고하는 내용을 적혀 있다고 하였으나

문제의 제3부는 루시아 수녀의 간청에 의해 개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3부를 `파티마의 비밀'이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성모님의 예언의 내용에 대한

신빙성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늘 어떠한 계시적 현상이나 발현 등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이 발생하였을때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것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오랜 세월에 걸쳐 밝혀내기 때문에

그 신빙성은 당연히 100%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 3예언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고 하지만

결코 그런 내용의 것은 그 내용을 밝히지않은 교황청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추측에 추측이 낳은 하나의 소문내지 괴측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불안과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교황청은 몇년전 그 발현의 내용을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과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대주교는

2000년 6월 26일 교황청 공보실에서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세 목동에게 일어난

성모님 발현에 관한 "파티마 메시지"(The Message Of Fatima)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문서는 베르토네 대주교의 서언, 루치아 수녀가 1941년 8월 31일 레이리아-파티마

의 주교에게 보낸 파티마 제1, 제2 비밀 부분, 루치아 수녀가 1944년 1월 3일 작성한

제3 비밀 부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루치아 수녀에게 보내신 2000년 4월 19

일 서한, 루치아 수녀가 2000년 4월 27일 베르토네 대주교와 레이리아-파티마 교구장

주교와 나눈 대화 내용,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2000년 5월 13일 히

야친타와 프란치스코 시복식에서 한 연설 그리고 라칭거 추기경의 신학적 해석으로 구

성되어 있습니다.

 

베르토네 대주교는 서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제3 비밀에 관한 루치아

수녀의 글을 공개하기로 결정하셨으며, 이 제3 비밀에 관한 글이 레이리아의 주교와 성

모님의 명령에 따라 1944년 1월 3일에 쓰여졌다고 밝혔습니다. 이 글은 처음에 레이리

아의 주교가 보관하고 있다가 1957년 4월 4일에 교황청 비밀 문서고로 옮겨졌으며,

1959년 8월 17일에는 교황 요한 23세 성하께, 또 1965년 3월 27일에는 교황 바오로 6세

께 전달되었으나 두 분 모두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1981년 5월 13일 저격 사건이 있은 뒤 파티마 제3 비

밀이 담긴 글을 요청하셨고, 1981년 7월 18일 교황 성하께 루치아 수녀의 포르투갈어

원문과 이탈리아어 번역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이에 교황 성하께서는 즉시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께 전세계를 봉헌하시기로 하고 몸소 기도문을 만드셨으며, 자신은 참석할

수 없었지만 1981년 6월 7일 성모 대성전에서 봉헌식을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개인적

으로 루치아 수녀는 전세계를 봉헌한 이 장엄 예식이 성모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루치아 수녀는 1982년 5월 12일 파티마 제3 비밀의 해석에 관한 편지

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 보냈습니다.

 

베르토네 대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파티마 제3 비밀 공개 결정이, 이 시

대가 권력과 죄악을 향한 인간의 비극적 욕망으로 뒤덮여 있지만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

랑과 예수님과 교회의 어머니의 세심한 배려가 충만한 역사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것

이라고 밝히고, 성모님께서는 인간의 미래가 하느님 안에 있으며 인간은 미래를 창조하

는 데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신다는 말로 서언을 끝맺습

니다.

라칭거 추기경의 신학적 해석은 세 부분, 곧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그 신학적 위치",

"사적 계시의 인간학적 구조" 그리고 "파티마의 비밀에 대한 해석 시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칭거 추기경의 설명에 따르면, 공적 계시는 인간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로서 구

약성서와 신약성서에 글로 표현되어 있으며, 사적 계시는 신약성서가 완성된 뒤의 계시

로서 파티마의 메시지가 이에 속한다고 합니다. 특히 공적 계시는 신앙의 대상이지만,

사적 계시는 이 신앙에 이르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추기경은 또한 성서적 의미에서 예언은 미래를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느

님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미래를 향한 올바른 길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추기경은 파티마 제3 비밀을 해석하는 열쇠가 바로 세 번 거듭되는 천사의 커다란 외

침, 곧 "참회하라, 참회하라, 참회하라!"에 있다고 밝힙니다. 시대의 징표를 이해한다

는 것은 곧 참회의 절박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이 순간

에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응답이라고 합니다. 루치아 수녀는 모든 발현의 목적이 사람

들의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자라도록 도와 주는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추기경은 제3 비밀에 담긴 모습에 대하여, 성모님 왼편에 불칼을 들고 있는 천사는 심

판을 경고하는 것이며 불을 꺼버린 성모님의 광채는 참회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합니

다. 여기에서 인간 자유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미래는 사실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닙

니다. 어린이들이 본 모습은 결코 바뀔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이 처한 위험을 보여 주는 동시에 우리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

다.

 

추기경은 루치아 수녀의 글에 나타난 가파른 산, 폐허가 된 거대한 도시 그리고 커다랗

고 투박한 십자가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산과 도시는 인간 역사의 무대입니다. 이 곳

에서 인간은 정상에 오르려고 노력하고 창조성을 발휘하지만,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업적

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파괴를 구원으로 바꿉니다. 그것은 역사의 고통을 의

미하지만, 역사에 대한 약속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환시에서 하얀 옷을 입은 주교,

곧 교황의 역할은 특별합니다. 교황이 거의 폐허가 된 도시에서 고통과 슬픔에 싸여 다

른 주교들,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다른 여러 신분의 신자들 앞에 서서 시체들 사이

를 지나가는 모습은 교회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폭력과 파괴와 박해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난 한 세기의 역사가 이 모습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

다. 루치아 수녀의 글에는 교황이 산의 정상에 다다랐을 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해

당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모님의 손'의 도움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

아왔습니다. 이것은 다시 한 번 불변의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앙과 기도야

말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며 기도는 총알보다 강하고 신앙은 군대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십자가의 두 팔 아래서 순교자들의 피를 모아 하느님의 길을 충실

히 따르는 사람들에게 뿌리는 천사들의 모습은 피와 눈물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파티마 제3 비밀의 결론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 징표

가 되는 것은 고통받는 교회, 순교자들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겪는 고통

에서 정화와 쇄신의 힘이 나옵니다.

 

라칭거 추기경은 파티마 제3 비밀에서 세상 종말에 관한 계시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는 실망스럽겠지만 파티마의 계시는 개별 사건에 관한 한 과거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합

니다. 이 비밀의 의미는 구원의 길인 기도를 권고하고 참회와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

다. 또 마리아의 순종("그대로 이루어지소서")으로 이 세상에 구세주가 오시고 역사가

바뀌었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깨끗한 마음으로 악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

다.

'천주교성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 갈매못 성지  (0) 2013.11.24
대구 한티순교성지  (0) 2012.07.08
posted by Bokto
2013. 11. 24. 09:30 천주교성지
728x90

2013년 7월 26일 가족들과 휴가 중에 보령에 있는 갈매못 성지를 찾아갔습니다. 
성지 기념관 입구 벽에 붙어 있는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님의 문구 한 줄에 큰 감동을 받고 가슴에 새겨두기 위해 찍어 둔 사진을 무보정으로 올립니다.

 

 

 

 

 

 

 

 

'천주교성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티마 성모 발현지  (0) 2019.07.10
대구 한티순교성지  (0) 2012.07.08
posted by Bokto
2013. 6. 25. 23:50 교리공부
728x90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천주교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교리를 배우고 있는 사람을 예비신자라고 합니다. 전국 어느 성당에서나 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교리를 배우고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비신자로 등록을 해야 합니다. 등록을 한 후 적어도 6개월 이상의 기간동안 교리 시간에 출석해야 영세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예비신자 등록이 궁금하시면 아래 서식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입교 안내 신청서

'교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냉담 교우를 되돌리는데 필요한 교회의 덕목  (0) 2012.12.03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  (0) 2011.06.03
그리스도인의 죽음  (0) 2011.06.03
평신도 사도직  (0) 2011.06.03
준성사와 축복예절들  (0) 2011.06.03
posted by Bokto
2012. 12. 3. 21:00 교리공부
728x90

겸손과 존중, 침묵

 

지금 미국을 여행하는 중인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종교인은 “전 가톨릭 신자”이며, 최근 몇 년 사이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사람이 5명 중 1명이 넘었다. 물론,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전 가톨릭 신자”다.

유럽과 호주의 교회에서 선례가 있고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회로부터의 “도매급 탈퇴” 때문에, 본당과 교구들은 이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샌프란치스코의 한 교회에는 검은 담벼락에 이들을 초대하는 낡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 끝난 “새복음화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주제로 로마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는 이런 비슷한 노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 아시아교회는 이처럼 대규모 신자 감소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청년들이 참여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수도회가 노쇠해가고 있다.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서구에서 시작된 교회의 쇠퇴는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교회는 상황이 막바지에 이르기 전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의 교회가 교회를 떠난 이들을 되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을 본받아 활용할 수 있을까?

반대로, 아시아교회는 서구교회에 다른 형태의 모범을 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추기경으로 선임된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대주교가 주교 시노드에서 밝힌 바 있는 겸손하고, 다른 이를 존중하며, 침묵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 세 가지 덕목이 어떻게 아시아교회를 비롯한 다른 교회에서 작용할 수 있을까?

만일 한 치약회사가 많은 광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소비자에게 왜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보아, 소비자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교회의 제품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지만, 광고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지만, 분명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광고는 “소비자”를 오히려 밀어내고 있다.

이들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 이 현수막은 지나는 사람들은 길 잃은 사람들이고 “똑바로 살기 위해서는” 품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대신, 교회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떠났나요?” “당신이 떠난 이유 중 어느 것이 우리의 잘못인가요?” “우리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말씀을 잘 표현하지 않았거나, 배반하거나 혹은 잘 전달하지 않았나요?” “우리가 어떤 사과를 해야 할까요?”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 같이 연구할 수 있을까요?” “다시 돌아오기 바라지만 두려운가요?”

이것이 바로 겸손이다. 성탄절이나 성 금요일 전례에 우리는 이런 덕목을 강조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결국, 타글레 대주교도 곧 “추기경 전하”가 된다. 하지만, 이런 겸손 없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교회의 갱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실패, 적어도 부적절했음을 인정해야 하며, 이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후회하고 회개하는 진정성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겸손한 질문 뒤에, 실제로 대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이들의 대답이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의 대답에서 정확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를 떠난 이들을 존중해야 하며, 이들에게서 교회를 떠난 이유뿐만 아니라 이들의 교회 “바깥에서의 경험”까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 또는 우리가 충성하는 단체에 대한 비판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유혹은 바로 이런 비판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고통이나 혼란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하며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고통스런 비판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은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재빠른 답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그런 답변이 사실상 필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또, 침묵은 우리가 배운 것을 가슴 속에 새기고 이것을 묵상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구도하는 사람들과 일치하려 한다. 침묵은 또 우리를 겸손함으로 이끈다. 타글레 대주교가 “교회는 침묵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만일 아시아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 특히 지도부에 있는 사람들은 겸손과 존중, 침묵의 가치를 배울 수 있고 이를 실행한다면, 현수막과 프로그램 등으로 교회를 떠난 이를 초대하고 장려하며, 설교하면 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갈구하는 서구 교회에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회 선교사이자 아시아가톨릭뉴스 발행인)

'교리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입교 신청  (0) 2013.06.25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  (0) 2011.06.03
그리스도인의 죽음  (0) 2011.06.03
평신도 사도직  (0) 2011.06.03
준성사와 축복예절들  (0) 2011.06.03
posted by Bo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