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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3. 21:00 성령의 은사

겸손과 존중, 침묵

 

지금 미국을 여행하는 중인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종교인은 “전 가톨릭 신자”이며, 최근 몇 년 사이 자신이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사람이 5명 중 1명이 넘었다. 물론, 이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전 가톨릭 신자”다.

유럽과 호주의 교회에서 선례가 있고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는 교회로부터의 “도매급 탈퇴” 때문에, 본당과 교구들은 이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샌프란치스코의 한 교회에는 검은 담벼락에 이들을 초대하는 낡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 끝난 “새복음화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주제로 로마에서 열린 주교 시노드는 이런 비슷한 노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 아시아교회는 이처럼 대규모 신자 감소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청년들이 참여하지 않아 점점 더 많은 수도회가 노쇠해가고 있다.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서구에서 시작된 교회의 쇠퇴는 아시아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교회는 상황이 막바지에 이르기 전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의 교회가 교회를 떠난 이들을 되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을 본받아 활용할 수 있을까?

반대로, 아시아교회는 서구교회에 다른 형태의 모범을 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추기경으로 선임된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대주교가 주교 시노드에서 밝힌 바 있는 겸손하고, 다른 이를 존중하며, 침묵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 세 가지 덕목이 어떻게 아시아교회를 비롯한 다른 교회에서 작용할 수 있을까?

만일 한 치약회사가 많은 광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이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소비자에게 왜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보아, 소비자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교회의 제품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지만, 광고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지만, 분명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광고는 “소비자”를 오히려 밀어내고 있다.

이들에게 교회로 다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것은 오만한 일이다. 이 현수막은 지나는 사람들은 길 잃은 사람들이고 “똑바로 살기 위해서는” 품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대신, 교회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떠났나요?” “당신이 떠난 이유 중 어느 것이 우리의 잘못인가요?” “우리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말씀을 잘 표현하지 않았거나, 배반하거나 혹은 잘 전달하지 않았나요?” “우리가 어떤 사과를 해야 할까요?”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 같이 연구할 수 있을까요?” “다시 돌아오기 바라지만 두려운가요?”

이것이 바로 겸손이다. 성탄절이나 성 금요일 전례에 우리는 이런 덕목을 강조하지만,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결국, 타글레 대주교도 곧 “추기경 전하”가 된다. 하지만, 이런 겸손 없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교회의 갱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실패, 적어도 부적절했음을 인정해야 하며, 이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후회하고 회개하는 진정성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겸손한 질문 뒤에, 실제로 대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이들의 대답이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하거나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들의 대답에서 정확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를 떠난 이들을 존중해야 하며, 이들에게서 교회를 떠난 이유뿐만 아니라 이들의 교회 “바깥에서의 경험”까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 또는 우리가 충성하는 단체에 대한 비판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유혹은 바로 이런 비판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고통이나 혼란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방을 존중하며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고통스런 비판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침묵이다. 침묵은 우리가 어려운 문제에 대한 재빠른 답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그런 답변이 사실상 필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또, 침묵은 우리가 배운 것을 가슴 속에 새기고 이것을 묵상하고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구도하는 사람들과 일치하려 한다. 침묵은 또 우리를 겸손함으로 이끈다. 타글레 대주교가 “교회는 침묵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만일 아시아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 특히 지도부에 있는 사람들은 겸손과 존중, 침묵의 가치를 배울 수 있고 이를 실행한다면, 현수막과 프로그램 등으로 교회를 떠난 이를 초대하고 장려하며, 설교하면 이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갈구하는 서구 교회에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회 선교사이자 아시아가톨릭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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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2. 3. 19:30 성령의 은사

머리말

지난 주 일간신문과 TV방송에 하버드 신학부 교수 캐런 킹(58)이 국제학회에서 예수가 직접 “나의 아내”라고 언급한 4세기 이집트 곱트어 파피루스 조각을 공개하고, 이에 근거해서 “예수에게 부인이 있었다”라는 예수 결혼설을 주장하여 미국 교계를 뜨겁게 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예수, 부인 있었다’ vs ‘전혀 신빙성 없다’,” 조선일보, 2012. 9.20. A25). 이러한 주장은 ‘예수는 독신이었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셨고 다시 오신다’는 성경적 정통 기독교 가르침을 부정하는 신성모독적 견해로, 이미 지난 10여년 전 이래 몇 차례 영지주의(gnosticism) 종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역사적 예수 왜곡사(歪曲史)의 또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여기서 필자는 최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영지주의 종교학자들의 왜곡된 주장들을 소개하고, 이러한 주장들이 1세기에 작성된 4복음서나 사도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고, 훨씬 후대인 4세기에 작성된 영지주의 문서에 의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왜곡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I. 역사적 예수에 대한 영지주의적 왜곡 사례

 

1. 예수 신화론

1999년 영국의 종교학자 디모시 프리크(Timothy Freke)와 피터 갠디(Peter Gandy)에 의해 출판된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란 논쟁적인 책이 2002년 9월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논란을 야기시켰다(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지음, 송영조 역, 예수는 신화다, 동아일보사, 2002년 9월, 조선일보 2002년 9월 25일자 A12면 신간 광고). 이 책에 의하면 “‘원래적 예수’(Original Jesus)는 ‘이방 신’(a Pagan God)이었다”는 것이다(Timothy Freke & Peter Gandy, The Jesus Mysteries, Three Rivers Press 1999, 340 p.). 이 책은 서기 3세기의 부적 그림을 제시하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이교도 신인(神人)인 오시리스-디오니수스(Osiris-Dioysus)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결론에 의하면 “기독교란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다른 이름에 의한 이방(異邦)종교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는 역사적 메시야의 전기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 지역에 수 세기 동안 퍼져 있었던 신인(神人) 오시리스-디오니수스(Godman Osiris-Dioysus) 이방신화를 유대교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본다. 프리크와 갠디는 “초기 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야기를 역사가 아니라 우화(寓話, allegory)로 이해했고, 심지어 예수를 이방 신인(神人)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영지주의자들이 4세기와 5세기에 로마교회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박멸되었다. 그 후로 공적인 왜곡선전에 의하여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은 이방(異邦)종교로 개종한 위험한 배교자들로 간주되었다. 프리크와 갠디는 “이들 영지주의자들이 본래 기독교인들이었다”고 주장한다. 프리크와 갠디는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Josephus)에 의한 예수의 언급은 후대의 위조(forgeries)이며, 역사적 예수의 실존에 관한 증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들의 주장은 3-4세기에 나타난 영지주의 문서인 나그 함마디 문서에 근거하고 있다. 영지주의 문서는 1세기에 작성된 사도들의 서신들과 복음서보다 훨씬 후대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미 초대교회 시 바울과 요한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영지주의를 이단(heretics)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프리크와 갠디의 예수상은 철저히 영지주의적 기독교 시각에 의하여 재구성되고 있다(이에 대한 비판 기고문, 김명혁, “기독교 왜곡 말라- ‘예수는 신화다’ 책의 출판을 보고”, 국민일보, 2002년 9월 26일자, 29면). 이미 초대교회의 교부들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터툴리안(Tertullian), 이레네우스(Irenaeus) 등은 당시에 문제로 부상한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오시리스-디오니수스 신화의 유사성이란 “사단적인 모방술”(diabolical mimicry)의 결과라고 비판하였다.

 

2. 다빈치 코드의 예수론

2003년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역시 나그 함마디 문서의 영지주의적 가설 위에 설계됐다. 『다빈치 코드』의 내용은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그 후손이 메로빙거 가문에 흡수되었다. 메로빙거 왕조는 예수의 후손을 비밀리에 보호하기 위해 시온 수도회라는 결사 단체를 만들었고, 이 시온 수도회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위인들이 수장을 맡아 왔다.”로 요약된다. 당시 미국에서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은 아마존 인터넷 판매에서 1위를 점하였고, 32주 동안 뉴욕 타임지 베스트셀러의 리스트에 올랐고 미국 ABC 뉴스 스페셜이 1시간 방영하였다. 이 소설은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과 신학적 발전에 관하여 왜곡된 주장을 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 역사의 진로에 있어서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정죄된 아리우스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자 아리우스에 의해 주도된 아리우스파는 ‘예수는 주목할 만한 지도자였으나 육체에 나타난 하나님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다빈치 코드』는 아리우스를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에 대한 대표자로서 두둔하고 있다. 니케아 회의의 아리우스를 두둔하면서 『다빈치 코드』는 “역사에 있어서 그때까지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유한한 선지자, 위대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인간(a man) 으로 보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4복음 그리고 사해사본은 물론이고 고대 문헌 어디에도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거나 성적인 관계를 가지거나 아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전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한 것이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1982년에 나온 책 「성혈, 성배」(예수 후손에 관한 비밀 고문서를 조사하고 메로빙거 왕가와 성당기사단에 대해 조사하여 발표했다는 책)에 의존하고 있고, 이 책의 저자들은 1953년 사기죄로 징역살이를 했던 프랑스인 피에르 플랑타르가 제공한 문서들에 의존하고 있다(다빈치 코드는 처음부터 거짓이었다. 출처 = http://blog.naver.com/ydkim0301/20042707510).

 

3. 콥트 문서의 예수 결혼설

예수가 “나의 아내”라고 직접 언급했다는 4세기 콥트어(語) 문서의 파편이 지난주(2012년 9월)공개됐다. 초기 기독교 연구가인 캐런 킹은 1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 콥트학회에서 이 문서 파편을 공개했다. 고대 이집트 남부에서 쓰였던 콥트어 문장을 해독했더니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이 드러났다고 했다. 그녀는 “정확한 입수 경로는 밝힐 수 없다”며 공개한 콥트어(이집트 토착어) 문서 파편에 스스로 ‘예수의 아내 복음(The Gospel of Jesus' Wif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함 크기의 이 문서의 문구들은 문장으로서 완성되지 않은 형태다. “내게는 아니다. 내 어머니가 내게 생명을 주었다” 등 맥락 없는 단어가 나열된 가운데 “나의 아내”라는 언급이 등장한다는 것이다.(“예수, 부인 있었다” vs “전혀 신빙성 없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 입력 : 2012.09.20 03:06, 조선일보, 2012. 9.20. A25). 킹도 이 콥트어파편에 대하여 “예수 사후 수백 년이 지나 만들어진 문서다. 예수가 결혼했다는 결정적 증거로는 볼 수 없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성경 외의 수많은 종교 문헌이 있지만, 예수가 혼인했다는 얘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4세기 콥트어 문서는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신약시대와 거리가 너무 멀어 신빙성을 얻기 어렵고, 문서 파편 하나로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

 

II. 영지주의 문서의 이단성: 나그 함마디 문서

 

예수의 삶과 관련한 영지주의적 왜곡의 역사는 오래됐다. 도마가 예수의 쌍둥이라고 확언한 ‘도마행전’, 가룟 유다가 예수의 진정한 제자였다는 ‘유다복음’, 깨달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도마복음’ 등이 그렇다. 이런 주장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중동 지역에서 새 문서가 발견될 때마다 불거졌다. 그 바탕에는 예수 사후 이집트 등을 근거로 번졌던 영지주의가 깔려 있다. 영지주의는 유대교, 기독교, 점성술, 그리스·이집트 철학·사상 등이 혼합된 일종의 이단 사상. 교리적으로 정통 기독교와는 큰 차이를 보여 3세기경 이후로는 사라졌다. 대부분의 기독교 영지주의 문서는 3~4세기 정도에 쓰였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며,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 등 4대 복음서는 대개 1세기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쓰인 것들이며 기록의 연대로 봐도 복음서가 훨씬 신빙성이 있다.

 

1. 나그 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 문서

나그 함마디 문서(the Nag Hammdi library)는 대표적인 영지주의 문서다. 이 문서는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Nag Hamma야) 지역의 자발 알 타리프 절벽에서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나그 함마디 문서’라고 부른다. 13개의 파피루스 묶음(코덱스·codex)으로 구성된 이 문서에는 ‘도마복음’을 비롯해 진리복음, 빌립복음, 마리아복음, 요한비서, 베드로 행전 등 기독교에서 이단시해 온 영지주의 위경(僞經)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서는 4세기의 이집트 상류에 있는 기독교 도서관에 속하는 13개의 파피루스본에 묶여 있는 52개의 콥틱(Coptic)문서이다. 이것들의 대부분은 초기 희랍문서의 번역이며 원래의 언어는 예외 없이 상실되어 있다. 그러나 1977년에는 콥트어(헬라어 알파벳으로 표현된 고대 이집트어)로 기록된 나그 함마디 문서 전체가 영역 출판돼 이제는 누구든지 볼 수 있다. 이 문서는 사해사본(쿰란 문서), 미지 복음서 단편, 비밀 마가복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문서로 분류되는데, 그 이유는 영지주의적 시각에서 기독교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지주의 문서라고 부른다. 영지주의 문서에 따르면 예수는 삼위일체의 성자가 아니라 신으로 가는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영지주의 교사(현자)’라는 것이다.

2003년 종교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에서는 사해사본이 예수의 선교를 매우 인간적인 용어로 서술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사해사본에서 예수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부분은 없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또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고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고 말하나, 사해사본은 물론이고 고대 문헌 어디에도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거나 성적인 관계를 가지거나 아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수의 결혼설 등은 대부분 전설이나 상상에 근거한 것이다. 영지주의 문서가 재구성하는 역사적 예수는 영지(靈知)의 지혜자로서 복음서에 나타난,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는 인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이다. 그러므로 3세기의 교부들, 저스틴, 오리게네스, 이레네우스 등은 그 시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영지주의 종파들을 정통 기독교의 흐름에서 벗어난 이단으로 정죄했던 것이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이미 초대교회가 정죄한 영지주의 문서로서 이단으로 간주되어 폐기된 문서이다.

 

2. 도마복음도 나그 함마디 문서에서 나옴.

나그 함마디 문서에서 나온 일부 문서인 도마복음(Gospel of Thomas)도 예수의 어록만을 담고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이다. 발견 당시 상형 문자와 그리스 문자를 겸용한 콥트어로 쓰여 있었다. 도마복음은 4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며, 예수의 가르침(어록)만을 포함하고 있는 데, 소위 겨자씨의 비유 등의 일부 내용이 복음서에도 나온다.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영지주의적으로 역사적 예수를 왜곡하고 있다. 나그 함마디에서 함께 발견된 문서에는 영지주의 문서 52편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문서들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도리어 도마복음처럼 4복음서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면서도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을 “영지적 자각으로 인한 영생”으로 왜곡한다면 그러한 문서들은 도움은 커녕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이것들은 초대교회 때 벌써 정죄를 받고 사라진 문서들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문서들이 발굴될 수 있다. 발굴된 문서의 내용이 교회의 전통에 일치하느냐 않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영지주의 문서는 초대교회가 이미 이단으로 정죄한 문서이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철저히 배제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사해사본 문서, 미지 복음서 단편, 비밀 마가복음 등은 우리들에게 외경적 가치를 가지고 복음서에 대한 배경적 설명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맺음말: 역사적 예수는 신화가 아니라 성육신한 말씀

요한일서에 사도요한은 1세기에 벌써 역사적 예수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미혹의 영들이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였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당시에 나사렛 예수의 생애와 유사한 것으로 부상한 오시리스-디오니수스 신화란 “사단적인 모방술”(diabolical mimicry)의 결과라고 비판하였다. 교부들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하였다. 3-4세기에는 예수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건 대중적 관심이 높아서 가짜 문서가 만들어졌다. 사단은 이러한 대중적 호기심을 이용하였다. 이미 초대교회에서도 바울과 요한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영지주의를 이단(heretics)으로 간주하였다. 사도 요한은 말씀의 성육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육신으로 오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눈으로 보았고 손을 만져보았다고 역사적 예수의 가시성과 구체적인 실존을 강조하였다. 영지주의 학자들은 영지주의의 영에 사로잡혀서 신약성서 및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가 그린 역사적 예수상을 영지주의적으로 왜곡하였다. 이번 캐런 킹이 발견한 “예수의 아내”를 시사하는 콥트어 단편도 영지주의 문서 가운데 하나의 자료일 뿐이다.

 

김영한 교수(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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