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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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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6.03 인간
2011. 6. 3. 22:59 교리공부

1.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
과연 하느님의 모습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성서의 창세기 제 1장 26절을 살펴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 짐승과 땅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들짐승들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라고 적혀 있다.
닮았다고 하는 것은 똑 같다는 말과는 구별이 된다. 닮았다는 말이지 결코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느님이 될 수 없고 그분과 비슷하게 되려고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누굴 닮았다고 하는 것은 누구와 비슷하다는 것이지 그 사람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얼굴을 고치고 성격을 개조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따라서 하느님을 닮은 인간에서 '닮다'라는 표현은 모습이라는 말에 내포된 동등함이라는 개념을 배제시키기 위하여 덧붙여진 것이다. 또한 우리 모습, 곧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란 동물이 갖추지 못한 인간의 지성, 의지,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하느님께 인간을 다른 피조물의 관리자로 내세우시기 전에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이 관계를 통하여 인간에게 마땅한 자격과 권위가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2. 인간 창조의 의미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이 먹을 양식이나 물이나 땅을 만드시지 않으시고 먼저 인간이 필요한 세상을 만드시고 맨 나중에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에 인간을 만드셨다. 그리고 인간을 위하여 인간이 필요한 여러가지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만드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성서가 하느님께 창조받은 세계가 무엇이며 인간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은 둘 다 인간 창조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하느님을 진흙을 빚는 옹기장이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공통된 표현법이며 이 표현법은 창조 행위를 묘사하는데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전적으로 하느님께 귀속되어 있음과 인간의 취약성을 강조하는데 의도 가 있다.
여기서 잠깐 인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하느님 ⇒ 사람 ⇒ 짐승 ⇒ 고기와 새 ⇒ 해, 달, 별 ⇒ 땅(풀과 나무) ⇒ 창공(하늘과 물) ⇒ 빛(낮과 밤) 등을 피라밋식으로 그려놓고 볼 때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지능이 높은 고등 동물이다. 이것을 보면 인간이 맨 나중에 만들어졌고 인간 위에는 하느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약육강식의 피라밋과 같다.
하느님은 인간을 다스리고 인간은 동물을 다스리고 동물은 식물을 다스리며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땅을 다스리고 땅은 물을 다스리고 있다. 바로 자기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어있는데, 결국 인간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느님과 가장 가깝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하느님께로부터 초대된 것이다. 이는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인간 중심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고 보존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고 있다. 이 초대를 무시하고 거절하면 인류는 동료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직권남용인 것이다.
3.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속성
인간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많은 말들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예를 들면 영혼, 자유의지, 진, 선,미, 지성, 사유, 등 많은 것들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특별한 것 몇 가지만을 살펴 보자.
1) 영혼의 존재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 영혼이란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당신의 입김을 불어 넣으신 것이다. 창세기 1장2절에는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고 하느님의 기운 (영)이 휘돌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으로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입김을 불어 넣으셔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는 그냥 "있어라" 하셨지 당신이 빚으시고 만드시고 입김을 불고 하시지 않으셨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자유의지의 선용
인간만이 선과 악을 행할 수가 있다. 여타의 다른 피조물들은 선이나 악을 행할 수가 없다. 호랑이가 다른 동물을 안잡아 먹는다고 해서 선이 되거나 다른 동물을 많이 죽인다고 해서 악이 되거나 하느님 대전에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다.
따라서 동물들은 아름다움이나 선을 추구할 수가 없고 그냥 본능대로 행동할 따름이다. 또한 물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를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이 정해주신 자연의 이치를 따라서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다.
3) 진, 선, 미의 추구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인간만이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고 참되고 바른 것을 추구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여 선을 행할 줄 안다. 살아 움직이는 것 중에서 인간만이 먹을 것을 앞에 두고 굶어 죽을 수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강아지라 할지라도 먹이를 앞에 두고 굶어죽을 수는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고귀한 힘인 것이다.
4) 인간의 이성
인간만이 이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술에 만취가 되어 본능에 따라 행동할 때 이성을 잃었다고 말한다. 우리말 사전에 따르면 이성이란 이치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성품인데 인간만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섭리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본능대로 먹고 마시고 싸우고 제멋대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인간의 근본 이치를 망각하는 것으로써 인간은 짐승과는 다른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5) 봉사
인간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희랍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오직 인간만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을 수가 있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안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세계를 사회라 하지 않고 무리 또는 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서 질서가 잡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자인 호랑이의 우두머리도 힘이 없으면 그 무리에서 쫓겨난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읽어 봤으면 허준의 스승이 허준을 위해, 아니 인간의 의술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행위 등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허준이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은 대단한 존재라고 감탄을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위대성을 볼 수가 있다.
실로 인간만이 위대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결코 죽음을 좋아하지 않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며 하찮은 벌레일지라도 위험이 닥치면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죽음을 추구할 줄 알고 삶을 버릴 줄 안다.
6) 인간의 양심
인간의 속성 중에서 특이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양심이다. 양심이란 사물의 선악을 구별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려고 하는 도덕적 판단으로서, 특히 자기 행위에 대하여 품는 선악에 관한 윤리 의식이다. 이러한 양심은 동물이나 여타의 피조물에는 없다. 이 양심은 인간을 더 아름답게 하고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인간의 삶을 더욱 더 풍요롭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4.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서의 인간
창세기 1장 26절에서부터 31절까지에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구절은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모든 이성과 지혜와 의지 등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자신의 과업을 인간에게 맡기셨다. 모든 피조물은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어떤 형태로든 발전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 바로 발전이 없다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거나 죽은 것일 것이다.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의 활동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활동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창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조가 끝났다고 하는 것은 바로 공심판을 나타내며 종말을 뜻한다. 따라서 종말이 올 때 까지 인간에게 맡겨진 것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스리되 주님의 뜻대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개발하고 발전시키라는 것이지 그것을 파괴하고 멸종시키고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바로 땅을 지배하라고 하심은 이 지배가 창조적이어야 하지 수탈과 파괴로 자행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력은 자유로이 그러나 책임있게 행사되어야 한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 앞에서 세계에 대하여 져야 할 그의 책임을 필연적으로 포괄한다. 오늘의 문제는 인간의 이 권력을 자연을 위해서 어떻게 하느님 앞에 책임있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 세상을 질서있고 조화있게 가꾸며 멋있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한창 일어나고 있는 생명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5. 인간 활동의 가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에덴 동산을 만드셨으며, 에덴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 이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에덴 동산의 완성을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담은 에덴 동산을 돌보며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들짐승과 온갖 날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다. 성서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는 이름을 받는 존재에 대한 주권을 확인하는 것이고 그 존재에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담은 모든 짐승의 주인으로 등장하여 짐승 하나하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짐승을 다스린다는 것은 노동의 행위로서 노동의 신성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노동으로 창조주의 사업을 계승하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며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취시키는데 개인의 노력으로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사목헌장 34항)라고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에 언급된 것처럼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창조주로 여긴다고 해서 인간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노동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노동이 없을 때 그것은 아주 비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을 통해서 다른 인간에게 봉사할 수가 있고 노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완성시키며 이 사회와 세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노동은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공경하는 것이 될 것이고 먼 훗날 하늘 나라에서 우리가 이 지상에서 행한 모든 노동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6.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자세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을 위하여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몇 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을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전세계에는 인종갈등, 종교갈등, 민족분규등 수없이 많은 이유로 전쟁과 폭력과 살인을 자행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전쟁이 없었던 때는 불과 300년밖에 안된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다국적기업의 횡포 속에 수백만의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어느 나라에는 쌀이 남아 논밭을 갈아엎는가 하면 어느 한쪽은 수백만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류가 충분히 먹고 남을 만한 식량을 주셨음에도 인간이 피조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양식을 충분히 주셨고 온갖 짐승과 날짐승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어김으로 인하여 심각한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수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들은 앞으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우선 모든 인간은 똑같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앞에서 인간은 상호 협력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듯이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야 한다. 똑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인데 어찌 내 가족 내 국가 내 민족을 구분하여 차별하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똑같이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가슴에 새겨 옆의 형제 자매 모든 인간들에게 협력하고 함께 살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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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ul E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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