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지리적 배경
예수님 시대에 팔레스티나의 지리 변천사를 다음 몇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가. 헤로데 대왕 시대는 팔레스티나 전역이 한 사람에 의해 통치되었다.
나. 헤로데 대왕이 죽은 뒤에는 이 지역이 그의 아들들에 의해(사분영주로서) 3개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다. 기원후 6년 남부지방(유데아, 사마리아)은 로마 총독 관할지역이 되었다.
라. 헤로데 아그립바1세 재위중인 41-44년에는 다시금 전 국토가 통일 관리되었다.
마. 아그립바1세 이후 팔레스티나 전체가 다시 로마 총독의 관할지역이 되었다.
(이 상태는 사실상 70년까지 계속됨)
분할지역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티나는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체제가 서로 다른 여러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이두메아
최남단지역으로 원래 에돔인들이 살던 땅이다. 기원전 5세기경에 아랍의 나바데아인들에 의해 정복당하였다가 기원전 2세기에 요한 히르카누스에 의해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그때 이후 이곳 주민들은 유대교를 믿도록 강요받았다. 앞서 살펴 본 헤로데 가문은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예수님 시대 이곳 가자, 아스칼론 라피아는 로마의 시리아주에 속한다.
유 대 아
구약의 유다왕국과 같은 지역이다. 수도 예루살렘이 위치해 있으며, 사실상 팔레스티나의 심장부이다. 주민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으며 국가 지도자들도 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해안 도시들은 희랍문명의 영향을 입었다.
사마리아
사마리아라는 명칭은 기원전 9세기 북이스라엘 왕국의 오모리왕이 사마리아시를 수도로 정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기원전 721년에 아시리아인들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자 사마리아의 남은 잔류민들은 이방 이주자들과 혼합되었다. 이곳의 종교는 처음에는 여러 가지 미신이 성행하여 야훼종교의 세력은 극히 미미하였으나 차츰 야훼종교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그들은 구약성경 중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였으며, 그리짐산에 성전을 세워 예루살렘 성전에 맞섰다(기원전 4세기말경). 유대인들은 또한 사마리아인들을 불경한 자로 경멸하였으며, 그로 인해 서로 적의를 품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부 유데아와 북부 갈릴래아 그 중간 지점인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서로 내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종 충돌이 있었다(요한 4,9; 루카 9,52-56).
갈릴래아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으로서 북부는 산악지대이다. 주민은 여러 민족으로 혼합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기원전 8세기부터 아라메아인과 페니키아인들이 들어와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희랍시대에는 셀레우쿠스 왕가의 지배를 받다가 시몬 마카베오 때부터 다시금 유다에 귀속되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1게기에는 이방 주민들에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갈릴래아에서 보내셨는데 그 당시에는 헤로데 안띠빠스가 갈릴래아와 베레아를 통치하고 있었다. 갈릴래아의 동북부 지방은 필립보의 영역에 속하였는데 유데아 주민들은 갈릴래아 주민들을 멸시하였다.
베 레 아
요르단 동부지역으로 동북쪽에는 데까뽈리스가 있다. 예수님 시대에 요르단 동부지역 전체는 사실상 이방인 지역으로 간주되었다.
데까뽈리스
헬레니즘화된 10개의 도시가 서로 동맹으로 일치된 지역이다. 이 도시들은 자주권을 지니고 고유 화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에 세금을 지불하고 징병의무도 지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멀리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다마스커스로서 예수님은 이 지역을 여러 번 다니셨다(마르 7,31;5,1).
가울라니티스, 트라코니티스, 아우라니티스, 아빌레레, 바타네아
이 가운데 아빌레레만 티베리아 호수 북쪽에 있고 그 외엔 전부 호수 동쪽에 있다. 시리아인, 아랍인 및 희랍인들이 거주하였으며 복음서에서는 이 지역에 있는 벳사이다가 자주 언급된다.
유다인들의 거주지역별 분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지방
가난한 산간 지방이었으나 신앙을 엄중히 지키는 주민들이 살았다.
사마리아 지방
기원전 721년 아시라아가 북부 이스라엘을 점령한 이래로 이곳에 이주해 온 아씨리아 민족과의 혼혈인이 많았으므로 유다인들에게 멸시를 받았고,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경멸하고 증오하기까지 하는 적대관계에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오경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종교 혼합주의 자들이었다. 이 사마리아 지방은 예루살렘과 갈릴래아 사이에 있었다.
갈릴래아 지방
주민들의 대다수가 아브라함과 모세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을 충실히 지켜왔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매주의 안식일 집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다. 한편 이웃 나라들과의 교류가 빈번하여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의 갈릴래아"라는 말도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활동은 바로 이 갈릴래아에서 시작되었다.
해외로 이산된 유다인
디아스포라라고 불리는 유다의 이산민들은 주로 지중해의 중요 항구들에서 살았다. 그 중에서 에집트의 알렉산드라 지역에 많았다. 이들은 각기 살고 있는 거주지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신앙을 충실히 지켰으며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관용주의를 표방한 해외거주 유다인들은 훨씬 쉽게 그리스도교를 받아 들였으며 훗일 선교활동의 거점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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