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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0. 12:25 구약성경

하느님께서는 우주의 창조물 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셨지만 인간은 교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고 가까이 찾아오셔서 용서와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이와 같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모세의 중재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새로운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신약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약의 말씀이며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는 말씀으로서 기쁜 소식이며 영감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구체적으로 연감된 하느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형태를 취하고 있다.

1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이스라엘의 생활 안에서(구약성경)
2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그리스도의 생애 안에서(4복음서)
3단계 : 세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 그리스도인들의 삶 안에서(사도행전,신약 서간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준비한 바를 신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시킨다. 즉 구약과 신약의 관계는 약속과 성취의 관계이다. '...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의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 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루카 24,44)는 말씀은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미리 보여 준 것임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셨다.(요한 10,34-35).

성경은 구원을 주는 능력의 말씀이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능력 입니다(로마 1,16)

성경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는 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해 준다고 요한 사가는 말한다. '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요한 사가는 성경의 목적을 생명이라고 했지만 사도 바오로는 구원이라고 말한다(로마 10, 9-10; 1,16). 그러나 결국 같은 의미이다. 생명과 구원을 주는 성경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며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우리를 회개의 생활로 인도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게 하며 우리를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에 참여하게 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다.
성경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오시는 구원자요 해방자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다(이사 52,7참조).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주어지는 고뇌, 갈등, 불안, 욕심, 교만 등에서 해방될 때 참 생명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게 되며 이 참 생명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구원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의 구원은 우리의 현 실존적인 것으로서 하느님께로의 끊임없는 개방과 궁극적인 의미에서의 존재 내지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영감된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우선 영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밝힐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영감은 성경적 영감을 말한다. 성경적 영감이란 어떤 인간에게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의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부여되는 특수한 하느님의 도우심을 의미한다.
교회는 신ㆍ구약성경의 영감을 인정해 왔고 하느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 기록된 것으로 주장해 왔다. 교회가 인정하게 된 성경이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구세사에 비추어 봄으로써 더욱 확신을 갖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말씀과 행적(업적 및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해 주셨고 당신의 현존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성경이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구약성경 안에 나타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해 봄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에집트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탈출기-여호수아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사건들 즉 에집트에서의 해방(구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계약 체결, 광야에서의 인도, 요르단 강을 건너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건들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손길을 보았고 하느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으며 하느님의 역사 개입을 믿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매 단계마다 당신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 지도자들과 예언자 들을 파견했다. 맨 처음 성조들을 통해서 말씀하셨고 그 후에는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다음에는 판관들, 왕들, 예업자들을 통해서 말씀 해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행적)와 지도자나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고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했다.

이상에서 말한 행적과 말씀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집 정리되어 기록되기 시작했다. 하느님께서는 구전으로 전승될 때에도 직접 활동하셨지만 기록되는 단계에서도 직접 영감으로 활동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기록된 말씀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졌고 하느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믿었다.

영감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 인간, 그리고 이다.
하느님
하느님의 영은 사람을 움직여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발언하게 하실 뿐 아니라 말씀과 행적을 전수하는 과정에서도 활동하시며 그 시대의 사고방식과 표현 방법을 사용하시어 기록하도록 성경 저자들의 의지를 움직인다.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반포된 성경 연구에 관한 회칙 '하느님의 섭리'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하느님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신 만큼 - 그들에게 아주 뚜렷하게 현존하신 만큼- 그분이 명하신 오직 그것들만이 우선 그들에게 올바로 이해되고 다음에 충실하게 기록되고 마침내는 적절한 낱말과 그르칠 수 없는 진리로 표현되었다.'
하느님의 충동을 받은 성경 저자들이 기록한 내용은 전승의 유산을 받은 계시의 내용과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인간
하느님께서는 인간 저자를 통해서 책을 쓰신다. 인간은 도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볼펜으로 편지를 쓴다고 하자. 그가 빨간색 볼펜으로 글씨를 쓴다면 빨간 글씨가 쓰여질 것이고 검은 볼펜으로 쓴다면 검은 글씨가 쓰여질 것이다. 즉 글씨의 색깔은 쓰는 사람에 의하여 제한을 받거나 종속된다. 인간을 통해서 나오는 하느님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저자의 어조,사상, 그의 인물됨, 그리고 그가 사는 시대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그래서 저자를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매우 다양한 표현으로 기술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성경의 원 저자가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원저자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이시고 인간은 이차적인 저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의 원 저자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하느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제시하여 주며 성경의 말씀은 반드시 뜻을 성취하고야 말기 때문에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사 40,8; 55,11; 에제 12,25)
이처럼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시대, 배경, 어법, 문체, 사상을 통해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책이니 그르칠 수 없고 진실하다(무류성).

성경의 명칭
페니키아의 항구 도시 비블로스는 파피루스의 수출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파피루스에 성경이 기록되었기 때문에 희랍계 유다인들은 그 항구의 이름을 따서 구약성경을 '비블로스' 또는 '비블리아'라고 불렀다. 5세기 이후에는 희랍교회가 성경을 '타비블리아'라고 불렀고 9세기에는 서방 신학자들도 '비블리아'라고 불렀다. 12세기에는 '비블리아'가 성경의 고유 명칭이 되었다

초대교회 때는 구약성경를 인용할 때 '사끄라 스끄립따(Sacra Scripta)'라고 했다. 그 뜻은 씌어진 거룩한 책이라는 뜻이다. 즉 글로 씌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글로 씌어지고 책으로 엮어진 것이다.

성경을 '떼스따멘뜸(Testamentum'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히브리어의 계약이라는 말인 '버리트(berit)의 번역이다. 이 명칭에 따르면 성경이란 계약의 말씀으로서 모세의 중개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책(구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새로운 계약에 대하여 말하는 책(신약)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구원의 계약을 '버리트'라 한다.

사도 바오로는 계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구약을 옛 계약이라고 했고(Ⅱ고린 3,14), 신약을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계약인 새계약(Ⅰ고린 11,25)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근거는 예레미아 31장 31절에 있다. 이 예언의 실현은 마태 26,28의 성체성사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도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마태 26, 2 8; 루카 22,20)

2세기 중엽에 와서는 신약과 구약이라는 말을 일반화시켜 사용하였다. 구약은 기원전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 사상을 중심으로 엮어진 구원 계약의 책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구약을 새롭게 완성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전인류와 맺으신 새로운 계약의 책이다

성경의 언어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지만 일부분은 아라메아어로 쓰여졌다. 자음 22자로 된 히브리어는 기원전 18세기 셈족이 발명한 언어로서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기원전 10세기 희랍인들에게 전해졌다가 로마인을 거쳐 유럽의 알파 벳의 기초가 되었다. 히브리어의 방언인 아라메아어는 셈족 언어에 속한 것으로 시리아 유목민들의 언어였다. 히브리어는 원래 아라메아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아라메아어와 유사하다. 아라메아어에는 동방 아라메아어와 서방 아라메아어가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 쓰인 언어는 서방 아라메아어에 속한다.(예 : 마르 5,41 '탈리다쿰' 마르 7,34 '에파타')

기원전 3세기경(희랍시대) :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희랍어(코이네-속화된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이것을 70인역(셉뚜아진따)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의 제2경전과 신약성경은 코이네 희랍어로 쓰여졌다.

기원후 2세기 말경(로마시대) :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고대 라틴어 번역 중 가장 유명한 것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에 걸쳐 성 예로니모(348-420)에 의해 번역된 불가타 성경이다. 이 불가타 역본은 히브리어 원문과 70인역본은 모두 대본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도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7~8세기에 이르러서는 모든 교회가 불가타역본(통용본)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언어
신약성경 27권을 기록한 언어는 '코이네 희랍어'이다. 이 코이네 희랍어는 기원전 330년경부터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가 전파된 그리이스, 알렉산드리아, 로마제국 안에서 쓰이던 일상용어였다. 이 코이네 희랍어는 신약성경 외에도,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도 사용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고전 희랍어와 구별하여 성경 희랍어라고도 합니다. 이 성경 희랍어는 히브리어, 아라메아어 및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상용어이기도 하여 독창적인 의미와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신약성경 27권은 모두 이 코이네 희랍어로 씌어졌는데 저자 친히 썼거나 혹은 구슬하여 쓰게 한 그 원본은 분실되고 수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다. 원문에서 베껴 쓴 수사본들은 베낀 것을 몇 번이고 다시 베껴 쓴 것들과 희랍어로 된 것만으로도 5,000여종이 있다.

성경의 장과 절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장절의 표시는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구약시대에는 회당에서 낭독하기 편리할 정도의 절 구분이 있었을 뿐이었다.

성경의 장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 후 226년 파리대학의 학장 '랑똥'에 의해서 였고, 절 구분은 랑똥과 동시대 사람인 도미니꼬회 신부 후고(+1263/4)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그후 1551년 파리의 인쇄업자 '엔띠엔느'가 리옹과 파리를 왕래하는 여행 중에 연구한 바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경의 장 절 표시는 1555년경 프랑스왕국의 인쇄담당자였던 '로베르트 스테파누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인쇄 담당자였으므로 성경을 편집하고 인쇄할 때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장 절의 표시는 문맥이 끊어지는 점이 있어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차차 수정되면서 오늘날에는 통일된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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