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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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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6.03 성모 마리아
2011. 6. 3. 23:12 교리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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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사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치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에서 하와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였고, 그 결과 죽음이라는 벌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죽음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이를 원죄라고 불리게 되었다. 구약성서는 이 원죄에서 인류를 해방하시고자 하느님께서 구세주와 그의 어머니가 될 한 여인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죄에 떨어진 원조에게 뱀의 머리를 짓밟을 여인이 약속되었고(창세3,15), 그 여인은 처녀로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주께서 함께 계시는 사람)로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가리킨다(이사7,14참조). 때가 차니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어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는데(갈라4,4-5참조), 그 여인이란 바로 악마의 머리를 밟아 죄악의 세력을 멸하고 승리할 구원자 그리스도의 모친이다.
루가복음 1장 26-38절을 보면 천사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고 인사한다. 마리아는 과연 은총을 가득하게 받으신 분이다. 이에 대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마리아는 대답한다. 마리아는 이 대답을 통하여 메시아를 잉태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성부와 본질이 같은 성자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인성(人性)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여 하느님의 구속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세주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구원사에서 마리아는 특이하고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리아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대망(待望)사상과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성취(成就) 사이에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순명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인류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2.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협력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시 여기며, 마리아의 자유로운 동의를 구한다.
마리아의 동의없이 하느님은 자신의 구원사업을 이루실 수 없다.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로부터 이루어진다. 따라서 마리아의 순명은 곧 하느님께 향한 자신의 온전한 '동정봉헌'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말대로 '정녕 복되신 분'(루가 1,35)이다. 복되신 마리아의 순명으로 아담과 하와로 부터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이어지게 되고 인류 구원의 역사는 마리아의 순명을 통하여 새롭게 전개되어 간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 되어 오셨기에 원조의 죄를 '복된 죄'라고 하였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인류에게 주셨다.
하느님은 한 여인을 세상에 보내어 당신의 아들을 잉태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원죄로 잃었던 인류의 생명을 다시 찾아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죽음이 들어온 것을 한 인간(마리아)의 순명으로 죽음을 물리치고 인류에게 생명이 찾아오게 되었다. 즉,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인류구원의 매듭은 엉클어졌다. 하와의 불순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자신의 불신앙을 통해서 얽어 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신앙을 통해서 풀어낸 것이다.

3. 마리아의 순명의 의미
마리아의 순종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구원의 주체이신 하느님이 죄 많은 인간들과 충만한 연대성을 맺도록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은 것(봉헌)이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순명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어머니,
구세주의 모친이 되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인의 대답인 것이다. 자신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도 오직 하느님의 전능하신 힘과 결코 그르칠 수 없는 인도하심을 믿고 오로지 당신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며, 그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 마리아의 대답이었으며, 거기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하느님의 인류구원에 협력하였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내어놓는 신앙이기에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귀감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대하여 거부하거나 마지 못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것처럼 기쁘게 순종하는 자세를 배워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태초에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준 잃어버린 생명을 마리아의 응답으로 되찾게 되었듯이, 우리도 하느님께 대한 순명을 마리아에게서 배워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생명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명하여, 그동안 잃어버린 생명을 찾아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여야겠다.

4. 교회의 어머니요, 신앙인의 모범이신 마리아
아브라함은 오직 하느님께 순종하여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지상 여정을 걸음으로써 그 결과 그에게서 큰 민족이 이루어졌다(창세12.1-4참조). 하느님을 향한 그의 여정은 하나의 큰 백성을 이룬 시조가 됨으로써 절정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시공을 초월하여 '신앙의 아버지', 또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 곧 바로 아브라함을 지칭한다. 이 귀한 호칭이 그에게 주어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기포기를 통하여 전 생애를 하느님께 의탁한 결과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신앙인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아드님이 가신 그 길을 온전히 함께 걸어감으로써, 그리스도교 최초의 신앙인이 되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며, 언제나 아드님 곁에 머물러 계셨다.(우리들의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어머니들은 한결 같이 자신이 낳은 자녀의 행동을 잊지 못한다.)
또한 마리아는 아드님의 말씀에 항상 귀를 기울이셨다. 그리고 끝내는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운명을 지켜 보고 시신을 끌어 안으신다. 마리아는 아드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에 함께 동참하였다.
어머니가 가신 그 길은 모든 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여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마리아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임을 분명하게 말씀 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이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6-27).

우리에게 나타나는 마리아의 모습은 하느님과 같은 자태, 기적의 아가씨 또는 초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한 한 인간, 한 여인의 본연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이때 우리는 프로테스탄트 제 종교에서 말하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리아에게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는 한 사람의 참 인간상을 볼 수 있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길이 어떠한가를 항상 마리아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성모님은 인간으로서 가장 가깝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신 분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다. 이 공경은 흠숭과는 다르다. 흠숭은 오직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드리는 것이지만, 공경은 모든 성인들에게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테스탄스 제교회에서 말하는 마리아께 대한 우상 숭배는 아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듣고 따르고 그 말씀을 지켰으며, 초대 교회에서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교회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모든 신앙인은 최초의 신앙을 가진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며, 교회의 어머니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가장 완전하게 따른 분이 마리아이다.)
구세주의 모친이 가신 길 즉, 자신의 봉헌과 사랑, 봉사와 희생, 고통과 즐거움 등 인생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살아간 마리아의 모습이 곧 우리들이 배워야 할 모델이며 과제가 되는 것이다.

5.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하여
성서에 근거를 둔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는 초대 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정통 신앙으로 고백하며 받아들여져(사도신경)왔다.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동정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동정성(동정녀 잉태(單性生殖)란 고등생물체에서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나 자연과학적 입장(이 입장에 대해서는 말할 때 하느님은 어느 때라도 새로운 상황을 조성할 수 있으며, 이 상황을 자연발생 안에 삽입시킬 수 있다. 창조 개념으로부터 기적의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연과학적 입장에서의 정당한 반론이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또는 신화론적 입장(한 인간의 여인과 신의 성적결합 또는 기적적 탄생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동정녀의 잉태와 탄생의 의미는 그리스도로 인한 하느님의 구원행위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에서 나오는 것임을 드러내는 징조이다. 또한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인간적 출생과 함께 그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역사를 통해서 이미 약속되었던 바로 그 아기였다는 것을 동정녀 잉태는 말해주는 것이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탄생이 보통 인간의 탄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탄생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정녀로부터 탄생하였다'라는 신조의 깊은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동정녀 출생을 상징적 의미로 가르친다거나 동정녀 잉태의 사실성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은 마리아의 자유로운 신앙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단순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조건없이 신뢰하고, 진심으로 사랑한 모습을 신앙인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하여 마리아처럼 "예"라고 응답하여야 한다.
이것이 평생 동정성의 핵심이며, 마리아의 신앙이다. 마리아는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선사하며, 그래서 마리아는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은 마리아의 아들이 된 것이다.
신앙이란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마리아가 받아들임과 같이 우리도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며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듯이 우리 자신들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마리아는 신자들의 모친, 그리고 교회의 원형이 되며 모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문제는 과학적이며 생물학적인 동정성의 문제가 아니며, 또한 관건이 되는 것은 성(性)이 아니라 마리아의 신앙이다.
바로 마리아의 신앙에서 동정성을 찾아야 하며, 마리아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대답 즉,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 라고 한 대답 - 하느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라고 순종한 대답-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개신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형제와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한다. 이것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현세의 인간적 부친을 가지지 않았다는 정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생명과 존재의 창시자요 원천이신 성부께서 바로 예수의 인간적 실존의 유일한 기반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동정녀 출산을 거스르는 반론을 제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예수의 온전한 인간임이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성을 성부로부터 직접 받았기 때문에 안전하고 충만하게 받았다.

6. 마리아에 대한 신앙교의에 대하여
1) 마리아의 모성
오랜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고 선포하였다. 이 교의는 413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대하게 교의로 선포 되었으며, 하느님을 낳으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것은 당연한다. 그러므로 '천주의 모친'이라는 호칭은 성자와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에서 분명하게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의 모성에 대하여 성모님은 몸으로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였다.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서 육체적으로 모친이 된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에서는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성전에서 성부께 바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아드님과 함께 수난하시며, 순명과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써 영혼들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온전히 독자적인 방법으로 구세주의 구세사업을 도와드렸다. 이 때문에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모친이 되시었다"라고 선포한다.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만큼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
2)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마리아의 무염시태란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리아가 영원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미리 구원사업에 참가하도록 선택된 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일체의 죄의 세력에서 구원받고 계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하느님을 낳으실 어머니가 원죄에 물들었다면 태어나는 아들 또 한 죄의 세력에 물들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어머니는 죄의 세력에 물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1830년 7월 18일에 프랑스 파리의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셔서, 당신이 원죄없이 잉태되었음을 알려주셨다. 그리하여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잉태 되시는 첫 순간,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미리 내다 보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 특은을 베푸시어 원죄에 물들지 않게 하셨다"고 선포하고 이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마리아는 다른 이들이 세례 때 받는 은총을 출생 이전에 미리 입음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도록 불림받았다. 이 교리가 선포된지 4년 후에 성모님께서는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발현하시어 이를 다시 알려주셨다.
3) 성모몽소승천(蒙召昇天)
성모님의 몽소승천이란 성모 마리아가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은 것,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약속된 영원한 생명의 영광에 맨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승천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승천은 스스로 하늘에 오르신 것이지만 마리아는 스스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구별을 하기 위하여 몽소(蒙召)라는 말을 사용한다. 몽소승천은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 즉, 마리아의 인격이 전적으로 부활한 그리스도와 일치함을 뜻하는 것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11월 1일 일찍부터 교회가 믿어오던 마리아의 승천을 신조(信條)로서 선언하였다.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모친은 지상생애를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에로 올림을 받으셨다." 마리아의 몽소승천은 "잠든 자들의 첫 열매요"(1고린15,20)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장차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일치로서 누릴 종말적 구원이 마리아의 몽소승천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마리아는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일 뿐 아니라 지상에서 천상도성(天上都城)을 향해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지막 날에 성모님과 같이 부활하여 승천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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