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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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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2.11.03 베드로의 첫째 서간
  2. 2012.11.01 야고보 서간
  3. 2012.11.01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4. 2012.10.30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5. 2012.10.30 티토에게 보낸 서간
2012. 11. 3. 08:00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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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교회에 보내진 다른 서간과는 달리 전 교회에 보내진 편지로, 당시 교회가 처한 공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ⅠㆍⅡㆍⅢ서, 유다서간과 함께 '공동서간', 또는 '가톨릭 서간'이라 불린다.

누가 썼는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베드로가 실바노에게 받아 적게 했다고 하지만(1,1;5,12) 사실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주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점, 아랍어를 쓰던 갈릴래아의 어부요 배우지도 못한 베드로가 정교하고 세련된 그리스어 문장을 구사하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사도 바오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표현(갈라 2장을 보면 두 사람은 거의 영향을 주고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원로(5,1)와 같은 바오로 이후의 교회제도가 언급되고 있는점 등은 베드로가 저자일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오로의 협력자요 이방인인 실바노가 베드로의 그러한 면을 보완해 썼다는 가설도 있지만, 실바노와 베드로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도 없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방계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이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빌어 썼다고 여겨진다. 편의상 그를 베드로라 부른다.

 언제 쓰여졌는가?
   1베드 5,13의 '바빌론'은 로마를 말한다.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70년 이후, 바빌론은 로마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구약시대 때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던 것을 빗대어 이야기 한 것이다). 이를 볼 때 베드로전서는 70년 이후에 쓰여진 셈이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 때인 로마에서 65-67년경에 순교했다). 그리고 2세기 초의 교회 지도자들이 베드로전서를 잘 알고 있었고, 125년경에는 파피아스가 이 책을 인용했던 것으로 보아, 쓰여진 시기는 90초를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베드로전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때, 박해의 범위가 로마를 벗어나 소아시아에 까지 확대되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70-92년경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본다.

 왜 쓰여졌는가?
   전 교회가 겪고 있는 고난과 박해의 상황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에 용기를 불어 넣기 위해 쓰여졌다. 당시는 황제숭배가 관습화되면서 점차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로마 제국 전체로 확산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년) 때였다. (네로 황제〈54-68년〉때에는 로마에서만 박해를 받았고, 네로의 뒤를 이은 두 황제는 박해하지 않았다).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했던 그리이스인들은 비방과 모욕을 받고 범죄자로 취급받는 등 모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은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일임을 힘있게 일깨우면서 그리스도인답게 형제애와 선행을 계속하도록 권고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박해를 받고 있는 소아시아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과 하느님의 은총 위에 굳게 서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베드로전서는 모두 5장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희망에 찬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제시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돌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1,1-2,10)
   시련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을 기쁨과 희망에 찬 삶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 태어난 사람들로서,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생생한 희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주님은 구약시대부터 예언된 고난의 길을 가신 분, 사람들에게는 버려진 모퉁이 돌이었으나 하느님에 의해 머릿돌이 되신 분으로 다가올 영광을 실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믿음의 목적인 구원을 얻게 하시는 분이시니, 지금 겪고 있는 시련 속에서 마음을 굳게 먹고 어떠한 행위에서나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늘 기쁨으로 즐거워 하라고 이른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2,11-5,15)
   고난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일깨우고 있다. 현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와 가정에 충실하고, 참 신앙공동체를 이루기까지 한마음으로 사랑하도록 권면한다. 특히 정의와 진리, 그리스도 때문에 겪는 고난은 행복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말하고, 하느님의 힘으로 봉사하고 사랑함으로써 곧 올 종말을 준비하라고 이른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은 그리스도인을 돌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면서, 영원하신 그분의 권능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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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1. 1. 12:30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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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는 초대교회의 귀중한 교훈서이다.

누가 썼는가?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1,1) 야고보가 썼다고 하나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주님의 형제로(마르 6,3; 갈라 1,19)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야고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후대에 야고보의 이름을 빌어 다른 사람이 썼다는 견해도 많다. 아마도 그리스어를 잘 하는 어느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썼으리라고 생각된다.

 언제 쓰여졌는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썼다면 그가 순교한 62년 이전에, 후대에 야고보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썼다면 1세기경에 쓰여졌으리라고 본다.

 왜 쓰여졌는가?
   야고보서의 독자들(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 사이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는가 하면(2,1-4) 진실을 거스르는 말과 논쟁(3,1.13-18), 시샘과 교만 등 세속적인 욕심으로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생활을 하던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신앙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오로의 가르침(로마 3,28)을 잘못 받아들여 선행은 필요없다며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신자들에게 진정 하느님의 자녀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일러주려 했다. 이로써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의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야고보서는 모두 5장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과 말의 중요함, 믿음과 행함의 관계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일러주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1,1-2,26)
   시련을 견디어내는 사람은 복되다고 하면서 시련에 싸일 때에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청하라고 한다. 또한 가난하다고 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하느님 앞에 진정한 경건심은 고아와 과부들이 괴로움을 당할 때 찾아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서는 죽은 것이며, 행함으로 믿음이 완성된다고 한다.

      하느님을 가까이(3,1-4,12)
   하나의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는 혀는 주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을 저주하기도 한다면서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말에 실수를 하거나 진리를 거스르는 말을 하지 말고 형제를 비방하거나 심판하지도 말라고 한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서로 화목하게 지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서로를 위하여(4,13-5,20)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부자들에게 따끔한 경고를 하고 있다. 또 기쁠 때에는 찬미의 노래를, 앓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치유를 받으라고 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떠나 헤매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그릇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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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1. 1. 07:00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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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중 유일하게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당신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대사제'라고 밝힌 특별한 성서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고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강론집'이다.

 

누가 썼는가?
   
초기교회 때부터 논란이 되어온 문제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바오로가 썼다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오로의 필체는 사실적이고 반복과 단절이 많으며 비약이 심한데 비해 히브리서의 필체는 정교하고 세련되어 있으며 조리있고 차분하다. 또한 히브러서의 주된 관심인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해 바오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바오로가 쓴 다른 편지에서처럼 자신을 사도로 내세우지 않는 점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바오로가 쓰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는 바오로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스어에 능통한 학자이자 사목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신자 공동체에서 권위 있는 지도자였으리라고 추정할 뿐이다.

 언제 쓰여졌는가?
   정확히 알 수 없다. 12,1 이하에 언급된 시련은 도미티아누스 황제(81-90년) 때 일어난 그리스도인 대박해를 가리킨다고 보는데, 이에 따르면 80년 이후에 쓰여진 셈이다. 그리고 95-96년경에 쓰여진 클레멘스 1서에 히브리서가 인용된 점으로 보아서는 90년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대략 80-90년경에 쓰여졌을 것이다.

 왜 쓰여졌는가?
   히브리서의 독자(혹인 청중)들은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 왔지만 아직도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었다. 모임에 자주 빠지고 선행과 봉사 생활에서도 멀어지는 등 나태해져 있었다. 게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81-90년)의 박해로 불안해하며 배교의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 이에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구원을 되새기고, 어떠한 시련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세우고자 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귀를 기울여 순종하도록 축구하면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통해 드러난 구원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신 새로운 약속을 일깨운다. 그럼으로써 신앙인들이 확고한 희망을 간직한 채, 선행과 사랑을 실천해 나가도록 이끌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히브리서는 모두 13장이다. 그리스도는 자비롭고 성실하신 대제관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대해 장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자비롭고 성실하신 대제관(1,1-4,13)
   신자들이 희망을 두었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를 일깨우고, 처음의 태도를 끝까지 굳게 지키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상속자시오, 천사들보다 위대하신 분이시며, 모든 이를 죽음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자 죽음을 맛보신 분으로 하느님 앞에서 대제관이 되셨으며, 모세보다도 더 위대하고 성실하며 자비로우신 대제관이시라고 했다. 그분으로부터 선포되기 시작한 구원을 들은 바대로 명심하라고 이른다. 또한 선조들에게 하신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 약속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며 굳은 믿음을 갖도록 이끌고 있다.

     새로운 계약을 세우신 그리스도의 제사(4,14-10,31)
   옛 계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새 계약의 제사를 비교하고 있다. 새로운 계약의 대제관은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피로써 단 한 번 제사를 바치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고 했다. 또한 그분이 들어가신 성소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이 아니라 하늘 자체이며, 그분은 그곳에서 엄위하신 분의 오른편에 더 좋은 계약의 중재자로 앉아 계신다. 이렇게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생명에 이르는 새로운 길이 열렸고 우리는 거룩해졌으니, 그 희망을 변함없이 지키며 서로 사랑과 선행을 부추기며 격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시련 속의 인내(10,32-13,25)
   구원의 역사에서 믿음으로 산 의인들을 상기시키면서 신앙 때문에 겪는 고난과 시련을 인내하고 극복하도록 북돋우고 있다. 약속해 주신 바를 얻기 위해서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오히려 이러한 시련과 견책은 하느님의 사랑의 표지라고 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심을 일깨우면서 그 분만을 바라보며 생활하도록 권고한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치욕을 믿음으로 기꺼이 받아 들이면서 사랑과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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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
2012. 10. 30. 22:00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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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개의 바오로 서간 중 마지막 책이다. 지역교회나 사목자들에게 보낸 다른 서간과는 달리 필레몬이라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와 함께 4대 '수인서간(囚人書簡)'에 속한다.

누가 썼는가?
   
옥중에서 바오로가 썼다. 편제에 사용된 문체나 어휘로 보아 바오로가 직접 썼음이 분명하다.

 언제 쓰여졌는가?
   바오로가 어디에서 감옥살이를 했는지에 따라 쓰여진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가이사리아(사도 24,27)나 로마(사도 28,16)였다면 58-63년경이고, 에페소(사도 19,8-10; 1코린 15,32; 2코린 1,8-10)였다면 54-56년경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가 에페소에서 바오로를 만났고, 바오로는 거기서 오네시모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 보내며 이 편지를 썼다고 본다.
   오네시모는 에페소에 인접한 콜로새 사람인데(콜로 4,7-9), 도망다니는 노예로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로마나 가이사리아까지는 도망가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망 다니는 노예라면 숨어지내기 좋은 항구 도시 에페소를 택해 머물렀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왜 쓰여졌는가?
   바오로는 극형에 처해질 위기에 있는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보호하고 싶어 주인인 필레몬에게 이 편지를 썼다.
   필레몬과 오네시모는 모두 바오로의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다. 오네시모는 비록 죄를 지은 노예지만,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로서 너그럽게 맞이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따로 없듯이 노예와 자유인도 따로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랑 앞에서는 모두 한 형제임을 일깨우고자 했다. 짧고 개인적인 이 편지가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필레몬서는 모두 25절로, 바오로가 쓴 편지 중 가장 짧다. 도망간 노예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해결하려는 바오로의 노력이 진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필레몬을 기억하며(1,1-7)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펠레몬과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안부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를 비는 인사로 시작하고 있다. 특히 성도들에 대한 필레몬의 믿음과 사랑을 전해 듣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믿음에 동참한 필레몬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전한다.
   바오로는 필레몬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면서 필레몬이 더욱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성도들 안에 계신 하느님의 뜻을 알 게 되기를 축원한다.

     오네시모를 위한 부탁(1,8-25)
   필레몬에게 그의 노예였으나 도망쳤던 오네시모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도록 당부하고 있다. 오네시모는 바오로를 만나 신자가 되었고, 지금은 교회와 바오로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전하면서 이젠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한 형제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특히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지은 빚을 자신이 갚겠다며 오네시모에 관한 문제가 주님 안에서 해결되기를 간곡히 청한다. 바오로는 필레몬의 집에 모이는 성도들을 만나고픈 강한 열망을 전하면서 편지를 끝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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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30. 21:00 신약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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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목자들에게 필요한 사목지침을 담고 있어 티모테오전,후서와 함께 사목서간이라 불리운다.

누가 썼는가?
 
  성서에는 사도 바오로가 티토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어(1,4) 초대교회로부터 오랫동안 바오로가 직접 썼으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바오로가 쓴 다른 편지와 비교할 때 문체서부터 신학적 용어, 어휘 등이 많이 달라서 바오로를 추종하는 후대의 사람이 썼을 것으로 본다.

 언제 쓰여졌는가?
   
서간에 나오는 교회제도가 초대교회와 다른 것으로 보아 바오로가 죽은 후 한 세대 이상이 지난 다음에 쓰여졌을거라고 본다. 이냐시오가 117년경에 보낸 편지에는 감독과 원로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티토서에서는 혼용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대략 100년경에 에페소나 로마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티모테오 전·후서보다 조금 먼저 쓰여졌으리라 생각된다.

 왜 쓰여졌는가?
   
그리스도교가 퍼져 나가던 1세기 말엽은 개척교회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교회를 조직하는 일에서부터 교회 구성원을 격려하고, 교회의 정통 가르침을 전수하며, 이단자들을 배척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사목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에 신설된 교회를 맡아 사목하는 이들이 이러한 갖가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일러주고자 한다.
   사목자는 사람들을 건전한 가르침으로 격려하고 훈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사목 협조자들도 가르침에 의거한 건전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또한 어리석은 논쟁이나 족보 시비, 다툼이나 율법 쟁론은 무익하고 부질없는 짓이므로 피하라고 권고한다.
   가르침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실로써 모범을 보이면 적대자들의 비난도 받지 않을뿐더러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는가?
   
티토서는 짧아서 3장 밖에 안된다. 교회를 사목하거나 사목에 협조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나이 많은 남자와 여자, 젊은사람 등 여러 신분의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내용에 따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1,1-4)
   바오로는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북돋우기 위해 사도가 되었다고 밝히면서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에 바탕을 두어야 경건함에 걸맞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이 편지는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복음선포의 사명을 부여받은 사도로서 공통된 신앙을 가진 티토에게 띄우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건전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1,5-16)
 
  티토를 크레타섬에 남겨 둔 이유는 뒷정리도 있지만 각 도시마다 원로들을 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원로와 감독자는 흠 잡힐 데 없는 사람으로서 가르침에 의거한 건전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정한 이득을 얻기 위해, 해서는 안될 것들을 가르치는 크레타인들을 엄중히 꾸짖으라고 한다. 그들은 하느님을 안다고 주장하면서도 행실로는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2,1-3,11)
   나이 많은 남자와 여자들, 젊은 남녀와 노예들 그 누구든지 간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바를 제대로 해 나가기를 권유한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손상되지 않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두루 빛낼 수 있게 되는데,  이렇듯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힘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나온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면서 하느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선행에 앞장서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선행에 앞장설 줄 알아야(3,12-15)
   니코폴리스에서 겨울을 지낼 것이므로 서둘러 오라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해주기를 부탁한다. 딱한 사정이 있을 때 선행에 앞장설 줄 알아야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문안인사로 편지를 끝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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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