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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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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3. 23:19 교리공부
1. 예언직
교회의 첫째 사명은 복음선포이다.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온 예수께서는 복음선포를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마태 28,19)고 명하셨다.
이 명령에 따라 사도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사도 바울로는 "내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1고린 9,16)이라고까지 말했다.
복음선포의 사명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이자 그 지체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지체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빛으로 주위를 밝혀야 하며, 복음의 빛 안에서 새로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한 증거자의 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보물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이 보물을 지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자랑스런 기쁨으로 복음선포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크게 두가지로 증거한다.
하나는 말로써 증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동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1) 말로써의 증거
사도 바울로는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다"(로마 10,17)라고 말하면서 말로서의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혔다.
원래 복음선포의 형식은 말로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여 듣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은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2) 행동으로써의 증거
한편 가장 힘있는 복음증거는 곧 생활을 통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남의 모범이 되고 복음정신에 맞을 때, 사람들은 그 생활에서 쉽게 하느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은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고 누룩이 빵을 부풀게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맛을 내고 세상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부풀어 오르게 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주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으로 이끌고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의 성실성을
보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3) 교회의 무류성(無謬性)
복음선포의 사명으로 예언직을 수행하고 있는 교회는 그 진리의 선포에 있어 그르칠 수 없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로써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튼튼한 기초로 삼으셨고 당신 교회의 가르침이 틀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교회의 무류성(無謬性)'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각 주교들이 무류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일치하고,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사정을 유권적으로 가르칠 때, 결정적인 한 가지 판단에 의견의 일치를 본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교리를 오류없이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주교들이 공의회에 모여서 세계 교회를 위해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가르치고 판단할 때에, 무류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니 이 결정 사항은 신앙의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35항). 여기서 교회가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은 오직 신앙과 도덕에 관해서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나 신자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일치를 볼 때, 그 진리는 틀릴 수 없다는 것이다.
2. 왕 직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나라의 왕이시다. 그 분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미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루가 19,38;요한 12,13)이라고 불렀을 때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셨다(마르 15,2;요한 18,33-37 참조). 그러나 그 분의 왕국은 지상의 왕국과 대결하여 맞서는 그런 성격의 왕국이 아니라 당신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날 완성될 왕국이라고 말씀하셨다(루가 22,28-30 참조).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되어, " 하느님의 아들들의 품위와 자유"(교회헌장 9항)를 누린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신분과 그 행사에, 하느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동참하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 수행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셨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드디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키심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하실 것이다(1고린 15,27-28).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며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주께서는 당신 왕국을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시키고자 하신다"(교회헌장 36항).
"구원의 계획 자체를 고려해서 신도들은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잘 구별해야 한다. 또한 이 두 가지를 서로 조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어떠한 현세적 일에 있어서나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인간 행위를 막론하고 현세적 일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지배를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런 구별과 조화가 신도들 행동 태도에 아주 명백히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사명이 현대 세계의 특수환경에 보다 완전히 응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교회헌장 36항).
그러면 왕직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몸소 말씀과 행동으로 분명한 답을 주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르 10,42-45).
실로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겉옷을 벗으시고,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써 종으로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셨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이나 노예들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정의한다면 아마도 '발을 씻겨주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세주이자 병을 고치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위로써 증거해야 한다. 특별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즉 가난하고 외롭고 감옥에 갇히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마태 25,31-46) 자비를 베풀어 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에 동참하는 자세는 자기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과 모든 이를 섬기는 데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기에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내놓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기분대로가 아니라 그분의 뜻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는 길이요,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의 자세이다.
3. 사제직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들의 정성을 하느님께 바치는 직책이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중개자인 대사제이며(히브 5,5-10) 그의 신비체인 교회도 이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류가 아버지 하느님과 화해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아버지"(마태 5,48)를 본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로마 5,11).
구약성서에도 이미 예고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는 길을 마련하셨으며, 그분이 바로 화해의 길목이 되신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을 대사제라고 한다. 예수의 사제직분은 당신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들인 신자들에게도 계승되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당신 안에서 사제다운 백성으로 한데 뭉치게 하시며, 당신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만드시는 일에 우리를 참여시키고자 하신다.
성세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하나의 사제단을 구성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하느님 백성이 참여하는 사제직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 참여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1) 일반사제직(一般司祭職)
베드로 사도는 그의 첫째 편지에서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리십시요"(1베드 2,5)라고 말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왕다운 사제단'을 이루고 있다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실상 그리스도의 사제직이란 모든 신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사제직 자격을 말하고, 이로써 지상의 교회는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 백성인 우리는 누구나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왕다운 사제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한은 견진 성사를 받음으로써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 더욱 굳세어진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은 죄를 범했을 때라도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의 사함을 받고 다시 하느님과 화해하여 행복한 사람이 되고,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에도 병자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다. 그리고 혼인성사를 통하여 남녀의 결혼이 거룩한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나타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여 자녀를 낳아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힘을 받는다. 이와같이 신자들은 각자가 성체봉헌에 참여하고 성사를 통하여 사제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를 일반사제직이라고 한다.
2) 교계적 사제직(敎階的 司祭職)
신자들의 일반 사제직과 직분상의 교계적 사제직은 정도의 차이뿐 아니라 본질적 차이로 구별된다고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러나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가장 완전하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히브 5,1-10;7,24;9,11-28) 신약의 참 사제로서 복음을 전하고 신도들을 사목하며 하느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축성되는 것이다.
사제들은 그 직무의 정도대로 유일한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임무를 나누어 수행하여 ...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깨끗한 제물로 성부께 한번 바치신(히브 9,11-28) 신약의 유일한 제사를 주께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미사성제를 재현하며 적응시키는 것이다" (교회헌장 28항).
사제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미사성제를 거행한다. 이 제사는 참으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완전한 공경과 흠숭을 드리며 축복을 받고 거룩해진다. 이와같이 교계적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미사성제를 거행하는 거룩한 권한을 갖고 있기에 모든 하느님 백성과 함께 백성의 이름으로 이 제사를 하느님께 바친다.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예수께로부터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즉, 평신도와 성직자는 성성(聖性)에로 부름받았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우리의 위대함은 우리가 받은 특별한 은총에 있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열렬한가에 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게 되기 위해 성성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4.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
교회와 그 성원들의 첫째가는 사명은, 항상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증거자가 되고 기쁜 소식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그 완성에 이르지 못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표양대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 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것이다.
신앙인은 또한 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써 성화의 길로 매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사와 전례에 적극 참여하여 각자의 생활을 봉헌하고, 성사와 기도생활에 충실하여 그 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일이다.
이 세 가지 사명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중요시하거나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한다면, 신앙생활은 조화가 깨져 기쁨이 없는 메마른 삶이 될 것이다. 이 세가지 사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요, 우리 교회는 그 분 의 모범을 따라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겨주신 사명이다.
5. 세례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의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
교회의 일원으로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곧 교회의 사명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 봉사와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직,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거룩함에로 참여하는 사제직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또 교회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다. 한 마디로 신자는 이런 사명을 부여 받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뜻이 전달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요, 이 나라는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사랑의 왕국인 것이다.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의 응답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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